2013년 5월 28일 화요일

히브리서 성경 공부 중에 히브리서 9장에서 금향로에 대한 위치에 대해 레위기와 출애굽기의 진술과 히브리서 기자의 진술이 어긋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에 그리스도 보혈 교회 성도들을 위해 아래와 같이 정확하게 정리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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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9:1-5
1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2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3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4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5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히브리서 9장은 천상의 예배와 그 예배를 이 땅에서 모형으로 나타내던 성막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천상의예배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대제사장직과 또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써 흠없는 제물이 된 보혈로 인해 현재 우리에게는 ‘믿음’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사건이 있기 전, 이 땅에서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장막 또는 성막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일년에 한번 하나님을만나 뵈었다.

성막 안에는 휘장이 있고 그 휘장에 의해 지성소와 성소가 나뉜다. 출애굽기 30장에 의하면 성소에는진설병과 상, 등대, 향단이 있고,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있다. 그 언약궤 속에는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그리고 십계명이 쓰인 두 개의 돌판이 담겨 있었다. 언약궤 위에는 속죄소라 하여두 그룹 천사가 날개를 서로 맞대로 언약궤를 덮고 있다.

그런데 히브리서 9장을 보면 성소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을 말하고, 지성소에 금향로와언약궤가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히브리서 기자는 출애굽기에서 설명한 것과는 달리 (출 30:6; 40:26) 금향로의 위치가 지성소에 있는 것으로 말한다.

휘장에 가린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로서 1년에 단 한번 속죄일에 대제사장만이 들어가 제사를 지냈다.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구속 사역을 마치셨을 때 지성소와 성소를 나누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마 27:51). 이 사건은 성도들이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이제까지 제한되었던 하나님의존전에 그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고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알려준다.

문제는 금향로에 대한 히브리서 기자의 묘사인데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이 문제는 향로와 지성소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면 간단하게 해결된다.즉,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번 속죄일에 향을 피운 향로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갔다.그는 속죄제를 드리기 전에 하나님 앞에 분향하며 그 연기로 속죄소를 가리웠다(레16:12, 13). 향의 연기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와 속죄소를 가리워 범죄한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죽음을 면하도록 하였다(출 20:18, 19). 지성소 안에서 감히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향이 필요하였다.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배를 드리는 현장과 순간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속죄일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금향단이 존재하는이유는 대제사장이 향을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도록 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이 속죄일에 그 향을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간다면 분향이 지성소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금향로가 지성소에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물론 금향로 기구 자체는 성소에 있다. 그러나 그 기구의 역할이 완성되는 때는 속죄일이기 때문에실제로는 금향로의 향으로 인하여 그 기구가 지성소에 있는 셈이 된다. 히브리서 기자는 현재 예배 순간을 논하는 것이기 때문에 금향로가 지성소에 있다고 본 것이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대제사장 역할을 하심으로 인하여 언제나 믿음으로 하나님의 존전으로 나아간다. 이제 우리는 향로가필요없고 휘장도 필요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만이 필요하다. 그 관계는 오직 믿음으로 형성된다.

예수의 비유 연구
 
                             
 
I.   
       우리가 신약의 복음서를 읽게되면 곳곳에서 비유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 비유의 말씀은 복음서 전체에서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1)  이와 같이 많은 비유를 대하게 되는 우리는 구체적으로 비유가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궁금증을 갖게 된다. 비유란 무엇일까 ?
비유의 수는 어느 정도 일까 예수님께서는 왜 비유를 사용하셨을까 비유를 해석하는 원리와 방법은 무엇일까 ? 하는 것이다.
사실 비유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갖게 된다면 우리는 그만큼 수월하게 복음서를 대하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본 소고는 이와 같은 궁금증을 풀기위함을 목적으로 하며 비유에 대하여 하나하나 개별적인 장면을 재생시키며 다루기에는 너무 광범위하여 전체를 포괄하는 면에서 개략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II. 비유의 개념
 
   A. 비유의 정의
        비유의 어원은 헬라어 파라볼레 (παραβολη)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παραβολη는 전치사 파라 ( παρα -beside )와 동사 발로” (βαλλω  - throw)의 합성어로써 그뜻은 비교 (comparison)또는 유비(analogy)를 뜻한다그러나 비유의 어원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히브리어를 관찰해야 하는데 파라볼레 히브리어 마샬 (           )의 번역이기 때문이다실제로  “      ” 에 있어서  “  ”는 두번의 예외 (정경외경            )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         ”의 번역이다 2)이와같은 어원적 배경을 가진 비유는 하늘의 의미를 가진 지상의 이야기라고 한다. 사전에는 어떤 진리나 도덕적인 교훈을 전달하기 위한 짤막한 풍유적 이야기또는 도덕적 혹은 영적인 진리를 예증하기 위해 일상 생활 사건들을 사용하는 간단한 이야기 라고 한다3)
신학자들중 C.H Dodd비유란 진리를 추상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보는 마음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다4)  라고 했고 , A.M Hunter비유란 한 영역에서 명백한 것이 다른 영역에서 명백하다는 가정아래서 자연과 일상 생활로부터 이끌어 낸 비교라고 했다.
G.E. Ladd 는 비유는 도덕적이며 종교적인 진리를 전달할 목적으로 일상 생활에서 소재를 이끌어 낸 이야기라고 한다.   이처럼 비유의 정의는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B. 비유의 수와 분류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비유의 수를 학자마다 다르게 집계하고 있다.  Trdnch30개로,Bruce33-41, Julich53, Jerdmias41, Hunter60, B.T.D. Smith62개 그리고 G.V Jones와 전경연은 각각 66개로 보았다. 이와같은 차이를 간단한 비유적 표현들을 얼마나 포함시키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5)
비유를 분류함에 있어도 그 방법은 학자마다 다르다. C.H.Dodd는 형태에 따라 구분하며 문장의 길이만 보고서 간단한 은윤적 비유 혹은 직유적 비유, 좀더 긴것 아주긴것 등으로 나누었다.6)
주제에 따라 구분한 자 도 있어 하나님나라, 하나님 나라의 성격과 활동 인간의 성격과 의무에 관한 비유로 나눈 것이다.
Bultmann  문학가적인 특성을 고려하여 수사적인 표현과 비교 그리고 순수한 비유라고 구분하였다7)   Hunter  는 불트만의 견해를 받아서 직유, 비교 ,이야기식 비유라고 용어만 바꾸어 썼다8)
 
   C. 비유의 소재
        비유는 연구해보면 꾸며낸 공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유는 나무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과 같은 동화 (fable)와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유에 분명히 팔레스틴, 때로는 갈릴리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비유속에서 전원적인 풍경이 사진처럼 박혀 있는 듯 한데 비유는 시골의 풍경에서 생겨 났음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사용하신 소재들을 세분하여 4가지 나눌 수 있다9)
        1.자연 (, , , , ...)
        2.인간관계 (주인과 종, 친구, 목자와 양, 신앙과 신부, 임금과 신하...)
        3.관습 (누룩, 파종, 아이들의 놀이...)
        4.예의적 상황 (포도원 농부...)
여기에서 예의적 상황이란 예수님이 가상해서 만든요소를 가르킨 것이다, 그러나 Hunter 는 비유의 모든 소재가  실제 생활에서 취해진 것이라고 하면서 가상적인 요소는 부연한다10)
포도원의 농부의 비유도 당시 부재 지주에게  저주받은 농부들고 소작인들의 불만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최초에 있었던 강도사건, 어떤 손님들이 준비를 못하고 있다가 결혼식에서 쫓겨나 이야기 등 모든 비유의 소재가 당시의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D. 비유 사용의 특징
        비유는 예수께서 처음 사용하신 것이 아니며 구약성서 에서도 비유사용을 찾아볼 수 있고, 유대교의 랍비들도 비유를 자주 사용하였다.11)  유대에 있어서 비유는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가르침의 방법이었다.12)  이러한 문화권에 사시던 예수는 많은것을 비유로 가르치실때 청중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을 사용하지 않으셨다이와 같은 것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비유는 위의 비유와 구별되는 독특성이 있다그 독특성은 형식 보다도 비유들의 전하는 메세지와 의미의 적합성, 자각성, 아름다움의 호소 등에 있어서 다른 비유들과 비교할 때 탁월함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예수께서 비유적 유형을 창안한 분은 아닐지라도 확실히 예서께서는 비유 가르침에 높은 독창성을 부여 하였다. 내용에 있어서 특히 하나님나라의 메셎등은 독특하다13)
 
 
 
 
III. 비유의 해석
 
  A. 교부시대
        초기의 비유해석은 알레고리 일색이었다. 알렉산드리아의 philo가 구약과 헬라의 철학을 융합하고자 구약을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면서부터 이 방법이 초대교회에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ireanius는 포도원 농부에 나오는 시간을 창조 이후 종말직전까지로 해석했다. fiertulians는 탕자 비유에 나오는 살진 송아지를 주님이라고 해석 했고 clement of Alexandria는 포조주를 그리스도의 보혈 기름은 아버지의 사랑, 싸매준다는 것은 신망애라고 선한 사마리아 사랑의 비유를 해석했다. 알레고리적인 해석법을 학문화 시킨 사랑은 오리겐이다. 그는 하나님의 삼위일체와 같이 인간도 삼위일체라고 보았을 뿐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까지 3중적인 해석을 시도했던 것이다.14)
 
   B. 종교개혁시대
        중세 1000년은 성경해석을 교회가 쥐고서 3중 또는 4중의미를 성도들에게 주입시켰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성경 번역이  점차 자유로와 졌다. 자연히 비유연구에도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루터는 4중의미를 원숭이 잔재주라고 하고 오리온의 해석은 더럽다고 하기 보다는 더 가치가 없다라고 비난했다15)  칼빈은 교부들의 알레고리적 해석을 게으른 자의 어리석음이라고 공격하면서 해석자의 마음대로 외치지  말고 저자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고 15)충고한다. 루더는 이에 성서를 문자대로 즉 알레고리적으로가 아니라 문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했으며 그의 성서접근은 역사적 그리스도 중심적이었다.
칼빈도 비유의 중요한 내용과 의미만을 찾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후에는 불행히도 루터, 칼빈의 뒤를 이을 만한 후배가 없었다.
 
   C. 현대의 해석
        19세기 말까지 알레고리적 해석방법이 지배하던 비유 해석사는  율리허와 더불어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되었다.     율리허는 비유와 알레고리사이의 차이점을 지적하면서 그때까지 비유에 알레고리적 해석방법을 중단시키는데 공헌하였다. 그러나 약점은 구약에 의존하기 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수사학에 의존하고 있으며 촛점을 윤리적인 것에만 두고 종말적론적인  성격을 찾지 못했다15)  율리허의  방법뿐 아니라 양식비평을 도입하여 율리허의 방법을 보완한 이가  있는데 그는 카우덕스이다그의 의도는 비유의 삶의  자리를 밝히는 것이었다.15)
그는 비유는 논쟁과 역경의  상황에 속하는 것들이여 예수가 사용했던 구체적인 상황속에 그것들을 적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비유 해석에 새로운 돌파구를    이는 실현된 종말론의 관념에서 해석하자는 결정을 가진 C,H.Dodd이다. 그는 비유가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 라고  하는 질문에 앞서서 그렇다면 청중에게는 무는  의미였는가 ? 라는 질문이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15)  예레미야스는 다드와 같이 비유들이 생겨난  예수의 생애와 선교의  실제 상황을 되찾고자 하였다. 그러나 예레미야스는 다드의 기본적인 방법을 조직적으로 자세히 세분화  시켰으며 예수의 진정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비유의  10가지 변형원리를 설정하고 있다.15)
이와같은  것은 예수의 비유가 문학 작품이 아니고 그 목적도 일반적인격언을 줄려고  할 것이 아니라 모든 비유들은 예수의 생활에 있어 실제적인 상황 즉 특수하고도 예언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 말해졌다는 점이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 있어서 비유연구에 대한 많은 학자들이 새로운 방향으로 이 하였다키신저는 다드와 예레미야스가 비유의 실제적인 문제와 문학적인 차원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하여 소위 신학적학파라 불리는 불트만의 후학들, 특히 폭 스가 주도한 운동이 생겨났다.고 하였다. 이들의 관심은 비유의 실존적인 교훈에 집중되어 있으며 푸치스의 신해석학적 통찰은 그의  두제자 린네망과  융엘에 의해 발전 적용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비유를 언어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다.15)  비유연구에  대한 최근의 논의에는 두가지의  다른 원리들 즉 구조분석과 심미적 비평이 있다15)  스타인은 두가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전자는 이야기의 표면 밑에 있는 의미의 깊은 구조와 더불어 그것의 근본에 관심을  갖는 반면, 후자는 희극 비극 등과 같은 paradiqms 과 그러한 문학적 양식들에 비추어 본문을 이해하고 자하며 본문의 표면적 차원과  폭 넓은 단위들에 관심을  갖는다15)
 
 
 
 
IV. 비유를 사용하신 목적
 
        예수께서  비유를 사용하신 목적은 마13:10-15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예수의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 즉 진리를 지상의 이야기나 은유적 표현을 통해 인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함이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목적이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감추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드러내기 위한 것인가 ?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A. 계시적 효과
        예수께서 비유로 가르치신 목적은 계시적 효과에 있다고 하겠다. 예수의 비유는 비유를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치신 후에 그 진리를 더욱 명확하게 밝히기  위해서 예증으로 비유를 사용하신것을 알 수 있다.15)  하나님께서는 무한 하시기에 인간을 유한한 정신에 하나님나라의 장엄한 계시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인간들에게 친근한 것들로 낮아져서 전해야 하셨다.15)
 
   B.은폐적 효과
        예수의 비유는 비유를 계시하고자 하는 목적의해 은폐적 효과를 가지셨던 것을 알 수 있다이 효과에 대해 가장 잘 밝혀 주는 부분은 13,4이다사실 예수님께서는 마13,4장 이전에도 비유를 사용하였으나 여기서 부터는 더이상 가르침의 예증이 아닌 가르침 그자체이며다른 교수 방법을 사용치  않고 비유로만 가르치셨던 이유는 예수께서 은폐를 의도하셨기 때문이다.15)   의도는 막 4:12에 잘 드러난다.
 
 
 
 
V.   
 
        지금까지 예수의 비유에 대하여 갖고 있던 궁금증을 비유의 점유 수와 분류, 소재 특성를 살펴보았고 비유를 교부시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해석하였나. 개략적으로  살펴보았고 예수님께서 비유를 사용하신 목적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본 소고를 통하여 아직도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은 아쉬움이 남아있다.
이제 결론적으로 정리하여서 비유를 해석하는 원리를 생각해 봄으로서 마치고자  한다.비유를 해석해야 하는 것은 오늘도  계속 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신자들에게 진리를 전하기 위한 의도도 비유로 말씀하실 때는 비유를  이해하기를 기대하셨다.먼저 비유가 주어진 상황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역사적 배경과 비유에 나타나는 종교,사회,정치 그리고 지리적 환경을 알아야 한다. 예수는 역사안에서 활동하셨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비유연구는 한 강조점에 집중해야 한다. 비유의 한  중심열쇠는 나머지 요소도 그 이야기를 위한 극단적인 배역에 지나지 않는다.
세번째로, 비유의  강조점은 예수의 가르치심과 성경전반에 걸친 말씀에 비추어 신학적으로 점검되어야 한다. 그럴때  비유에 대한 구속사적  위치의 바른 이해가 될 것이다.
네번째로, 비유가 교리의 첫번째 근원이 되어서는 안된다. 비유는 상징적인 언어이므로 교회를 위해 사용할 수 없으며 교리의 일부를 설명하는 하나의 수단이지 교리  그 자체는 아님을 알아야 한다.
끝으로 비유는 오늘날의 요청이 부합되는 의미를 주어야 한다. 비유 해석자는 보다 폭 넓은 해석 방법을 수용하여 예수의 상황과 초대교회의 상황 그리고 복음기자들의 상황을 이해하여야 하여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의 삶을 향하여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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