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6일 일요일


믿음과 행함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논의는 2000년 교회사 동안 계속 이루어 졌습니다.
일단 양극단을 피해야 합니다.
믿음만 강조하고 행함을 무시하는 방종주의 또는 안티노미안주의 입니다.
믿기만 하면 믿음의 고백이후 어떤 삶을 살더라도 심지어 죽을 때까지 방종 속에서 살더라도 구원을 받는다는 가르침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잘못된 이단적 가르침입니다....

그 다음 행함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행함이 없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즉 행함을 구원의 조건으로 격상시키는 율법주의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성경과 일치하는 균형잡힌 가르침일까요?

첫째, 진실된 믿음만이 구원의 조건입니다. 구원을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가장 극명한 예가
바로 주님옆에서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입니다. 그는 전적으로 믿음과 그 믿음의 고백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둘째, 진실된 믿음이 자라나기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면 그 믿음은
반드시 선한 일을 행함이라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즉 믿음은 행함을 잉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비유적으로 말해서 10개월이 지나면 반드시 행함이라는 자녀를 낳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고백한 후에 그 믿음이 자라나기에 충분한 시간을 허락받은 사람은
반드시 행함을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야고보 선생이 말하는 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겁니다. 아기를 못낳는 죽은 태라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십자가 상의 강도는 주님에 대한 신앙고백 이후 그의 믿음이 자라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믿음이 행함이라는 열매를 맺는 과정을 관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믿음이 진실된 믿음 참된 믿음 살아있는 믿음이었기에 그 믿음 하나로 영원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한 후에 상당한 시간을 허락받아 살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 속에서 행함의 열매, 선행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심각하게 우리 자신의 믿음이 참된 믿음인지를 질문하고검토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참되고 살아있는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까?
아니면 입술의 고백뿐인 죽은 믿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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