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ces Jane Crosby
Fanny Crosby
1820-1915
Born: March 24, 1820, Putnam County, New York.
Died: February 12, 1915, Bridgeport, Connecticut.
Buried: Mountain Grove Cemetery, Bridgeport, Connecticut.
Frances Jane Crosby
Fanny Crosby
1820-1915
Born: March 24, 1820, Putnam County, New York.
Died: February 12, 1915, Bridgeport, Connecticut.
Buried: Mountain Grove Cemetery, Bridgeport, Connecticut.
한국인이 뽑은 가장 은혜로운 베스트 찬송의 주인공이며 은혜로운 찬송 수 천여 편을 써 기네스북에 올라있는 이가 있다. 평생 시각 장애로 은혜로운 찬송시를 쓴 세계 최고의 영혼의 찬양 전도자는 패니 크로스비 이다.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난 지 1백년이 넘게 지났다. 하지만‘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더 가까이 가오니, 구세주의 흘린 보배 피로서 나를 정케 하소서’ 등의 주옥같은 찬송가들은 오늘도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과 은혜를 주고 있다. 그녀의 찬송을 들으며 일상을 탈피하고 하늘의 기쁨을 누려 볼 수 있었다.
장애인인 패니 크로스비가 기도와 성령 충만함으로 8,000여 편의 찬송작시를 했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정감 있는 찬송을 부르면서 이 찬송이 누구에 의해서 쓰여졌을까를 생각하며 부르는 이는 많지 않다. 더구나 이 아름다운 찬양의 가사를 쓴 주인공이 어떤 일생을 살았을까? 이 귀한 찬양들이 어떻게 세상에 나왔을까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찬송가 작사가로는 단연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패니 크로스비의 삶을 짚어보고 싶다.
패니 크로스비는 1820년3월 24일 미국 뉴욕 주의 조그마한 마을 푸트남에서 출생했다. 그녀는 출생 6주 후에 병이 들었다. 그녀의 가정주치의는 당시 출타 중이어서 카운티 의사가 진료를 했는데 의사의 의술 부족으로 평생 시야를 잃는 결과를 가져 왔다. 설상가상으로 생후 1년이 되었을 때 아버지도 중병이 든 며칠 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실명이 된 후로는 집안사정이 여의치 않아 의사의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아주 어렸을 때 의사를 잘못 만나 평생 앞을 볼 수 없었다니 얼마나 기구한가? 정상인으로 눈을 며칠 가리고 살아보면 패니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까?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어머니는 가족의 부양을 위해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패니는 많은 시간을 할머니와 함께 하며 그녀로부터 인생의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할머니는 그 누구보다 가장 가까운 좋은 친구가 되어 주셨다. 할머니가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동산의 꽃과 나무를 상세하게 묘사해 줌으로 패니는 아름다움을 느끼며 자연과 조물주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꽃의 향기도 맡을 수 있고, 색깔도 알 수 있도록 친절히 자세하게 묘사해 주셨다. 외할머니가 패니의 눈이 되어 준 것이다. 자연은 그녀에게 최고의 배움터가 되었다. 할머니는 자연과 성경말씀을 연결하여 설명해 주며 말씀을 암송하도록 하고 성경공부지도를 지도 해주었다. 덕분에 그녀는 놀라울 만큼의 암기력을 가지게 되었다. 모세 5경, 시편과 잠언, 그리고 신약성경 대부분을 암송할 수 있었다.
패니는 후에 성경에 대해 이렇게 고백하곤 했다.
“많은 어려움을 당하던 시련가운데에서라도 나는 성경을 사랑합니다. ‘주의 말씀은 항상 옳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며 증명해왔습니다. 나의 삶 가운데 그것들은 항상 ‘예’와 ‘아멘’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그녀를 살게 하는 힘이었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은 귀중하고 기쁘게 사물을 인식하는 또 다른 훌륭한 감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삶이 어떠하든지 마지막 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평안으로 쉬게 될 것임을 말씀을 통해 알았습니다.”
경건한 할머니는 성경뿐 아니라 탁월한 문학작품도 많이 읽어주었다. 패니는 그것들을 암기 할 만큼 심혈을 기울였다. 이런 할머니의 경건한 영향은 수많은 감동 어린 찬송으로 거듭났다. 그녀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함으로 일을 시작하고 골방 기도로 마치며 찬송을 썼다고 전한다. 패니를 가장 사랑하던 할머니도 패니가 11살 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느 날 그녀는 자기 삶의 원대한 꿈을 실현해 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평생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막막하고 답답했다. 순간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채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그 때마다 그녀는 기도 장소로 가서 하나님께 위로와 용기를 구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은 패니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었다. “실망하지 마라, 실망하지 마라, 어린 소녀야, 넌 언젠가는 행복해질 것이다. 앞을 보지 못해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소중히 쓰임 받게 될 것이다.”
그녀는 그녀의 실명을 나쁜 징조라 보지 않았다. 그녀의 불행했던 인생은 하나님의 계획을 위해 허락 하신 하나님의 뜻이라 보았다. 비록 많은 이들이 불쌍하게 보았던 그녀지만 그녀는 장애를 장애로 보지 않는 신실한 눈을 가졌던 것이다. 슬퍼하고 불평하는 대신 처해진 상황을 믿음의 눈으로 보며 만족과 감사 그리고 찬양의 길로 자신을 이끌어 낸 것이다.
어린 8살의 크로스비가 쓴 그녀의 첫 번째 시를 소개한다.
정상인도 표현하기 어려운 귀중한 표현이다.
“난 얼마나 즐거운 영혼을 지녔는가! 비록 내가 볼 수는 없지만, 난 이 세상에 만족하려고 결심했네. 얼마나 많은 복을 내가 누리는지, 다른 이들에게는 이 복이 없으리. 내가 장님이기에, 울고 한숨짓는 일, 난 할 수 없으리, 하지 않으리.”
어느 날 목사님이 동정 어린 말을 전했다. “내 생각에는 조물주가 당신에게 복을 줄 때 시력을 주지 않은 것은 참으로 유감입니다.”라고 했다. 그녀는 재빨리 대답했다. 만약에 제가 다시금 출생 하게 되어 원하는 것을 요청 할 수 있다면 “전 소경으로 태어나기”를 원할 겁니다. 왜냐하면 내가 천국에 들어갈 때 볼 수 있는 맨 처음 얼굴이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답했다.
그녀의 대답에서 우리는 천국의 소망을 본다. 하나님의 뜻과 함께...
하나님의 간섭과 인도하심으로 그녀에게 그런 축복의 만남이 이어진 것이다. 배움에 대한 간절한 갈망과 열망으로 배움의 길이 그녀에게 열렸다.
1834년 뉴욕 맨하탄에 새로 설립된 맹인학교에 전액장학생으로 입학이 되었다.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홀리 부인과의 축복된 만남의 결과였다.
학교 교장 존스 박사와 조지 콤 박사 등 많은 사람을 통해 패니는 놀랍도록 성장해갔다.
특히 조지 콤 박사는 패니를 만나 격려해 주었다. 게다가 그녀를 위해 특수 교사를 지정하여 패니가 탁월한 작가가 되도록 많은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좋은 책과 시 그리고 작가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후세에 커다란 업적을 남길 아이라고 했다. 패니는 맹인학교에서 시를 짓는 것에 대해 열심히 공부할 뿐 아니라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영어 문법, 수사학, 그리고 로마와 헬라 역사교사로도 충실하게 일했다.
그녀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서 지대한 좋은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만나는 이에게 감동과 강한 영향을 주었다. 편협된 사귐이 아닌 각계각층의 사람들, 경제인, 소설가, 작가. 시인. 대통령, 고와와 과부, 가난한자, 그리고 부한 자들과의 다양한 만남과 교제를 통해 그녀의 열정이 만들어졌다.
그녀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동역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찬양시에 곡을 붙여 주었던 소중한 동역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찬송에 대해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준 미국음악의 개척자 ‘로웰 메이슨,’ 패니의 아름다운 서정시가 대중의 심금을 울리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던 분들이었다. 진정한 동역자가 되어 준 윌리엄 브래드베리, 조지 루트,로버트 로우리 박사, 무디와 생키 등의 직, 간접적 만남은 그녀의 소중한 동역자들이었다.
필립이 패니에게 시를 받았을 때 ‘어떻게 해서 단 하나의 시도 순서나 배열이 틀리지 않는거죠?’라고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나의 마음은 커다란 서랍이 있는 창고와 같습니다. 그곳에 수많은 시들이 보관되어 있고요, 또한 거기에는 완성된 시, 완성되지 않은 시, 그리고 완성되어가는 시가 있습니다. 그 시들을 주제별로 또는 완성도에 따라 정확하게 각 서랍에 보관되고 언제든지 꺼내어 쓸 수 있게 했답니다.” 주옥같은 찬송가사는 그의 마음에 이미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패니의 시는 많은 이에게 읽혀지고 감동을 주며 영향을 주면서 명성이 높아갔다. 1858년 3월 8일에는 밴 엘스틴과 결혼을 하여 아름다운 가정을 이룸으로 서로 의지하는 기쁨을 얻었다. 일 년 후에 얻은 귀여운 아이는 애석하게도 곧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필요로 할 때 아낌없이 자신을 내 주었다.
맹인 학교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온 힘을 다했다. 짧지 않은 생애 동안 하나님의 변치 않는 약속을 굳게 믿고 나아갔다. 1915년 2월12일 생을 마감할 때까지 94년의 삶 속에서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소망과 하늘의 기쁨, 감사가 넘치는 충만한 삶을 살았다.
그녀의 성령 충만한 삶은 찬송을 통해 오늘도 우리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며 많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이끌고 있다. 그녀의 놀라운 하나님 주신 재주와 능력은 감동과 은혜로운 찬송으로 우리와 함께한다. 그녀의 믿음은 별 같이 빛나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다음은 그녀가 작사한 찬송가들입니다.
새찬송가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31장)
△‘찬송으로 보답할 수 없는’(40장)
△‘예수 나를 위하여’(144장)
△‘주가 맡긴 모든 역사’(240장)
△‘너희 죄 흉악하나’(255장)
△‘인애하신 구세주여’(279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288장)
△‘기도하는 이 시간’(361장)
△‘나의 생명 되신 주’(380장)
△‘나의 갈길 다 가도록’(384장)
△‘오 놀라운 구세주’(391장)
△‘주 예수 넓은 품에’(417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435장)
△‘십자가로 가까이’(439장)
△‘주와 같이 되기를’(454장)
△‘저 죽어가는 자 다 구원하고’(498장)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531장)
△‘주께로 한 걸음씩’(532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540장)
△‘예수 사랑하심을’(563장)
△‘예수께로 가면’(565장)
△‘후일에 생명 그칠 때’(608장)
△‘언제 주님 다시 오실는지’(통일찬송가 163장)
△‘주의 십자가 있는데’(통일찬송가 50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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