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8일 화요일

귀납적 성경연구(PBS)

귀납적 성경연구는 영어로 Inductive Bible Study이지만, 일반적으로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는 성경연구이기 때문에 단순히 Personal Bible Study를 줄여서 PBS라고 한다. 여기에 소개하는 귀납적 성경연구 방법은 아나톨레에서 사용하는 방법론을 보고랜드주인이 귀납적 성경연구 Workshop을 하면서, 자신의 필요에 따라 수정 보완한 것이며, 이 과정에서 특별히 IVP 성경연구핸드북(1994)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1. 성경공부

1.1 성경을 대하는 방법

우리가 일반적으로 성경을 접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통독: 계획을 세워 성경을 읽는 것이며, 성경을 공부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성경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암송: 성경의 핵심 구절들을 기억하며 되새겨보는 방법이다. 암송한 성경구절은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고 묵상할 수 있으며, 특히 전도나 상담할 때 큰 도움이 된다.
묵상: 본문을 읽으면서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여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방법으로 경건의 시간(QT)에서 주로 많이 사용된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은 이 방법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연구: 짧은 성경 본문의 의미를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성경의 깊은 의미를 깨닫는 데 효과적이다.
강의: 성경 전체 내용 중 관심에 따라 특정 주제나 내용에 대해 전문가의 견해를 듣는 공부 방법이다. 성경 전체의 내용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강해: 성경 본문을 현대의 상황에 적용하는 것에 큰 비중을 둔다.
토론: 묵상과 연구를 바탕으로 특정 본문이나 주제에 대해 함께 논의하는 방법이다. 함께 이야기하는 가운데 성경 말씀이 사람에 따라 얼마나 다양하게 적용되는지를 배울 수 있으며, 이야기하는 가운데 새로운 의미가 발견되기도 한다.
1.2 두 가지 접근법
연역적 접근법: 어떤 결론이나 틀을 미리 만들어 놓고 그것을 입증해 나가는 방식
귀납적 접근법개개의 사실에서 출발하여 결론에 이르는 방식
1.3 성경공부는 협력사업

성경공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도우심에 따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 나가는 협력사업이다. 즉 나와 하나님, 성령, 성경, 사람들이 함께 하는 작업인데, 특별히 사람들이 포함되는 것은 토론을 통해 형제 자매를 서로 세울 수 있고, 다같이 풍성한 은혜를 나누는 일이기 때문이다.

1.4 왜 귀납적인 방법인가?

귀납적 성경 연구는 적은 분량의 본문을 관찰하고 해석하고 그렇게 해서 얻어진 본문의 메시지를 삶에 적용하고자 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            연역적인 접근방법의 틀과 결론은 귀납적인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            연역적인 종합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세밀한 곳까지 경험할 수 있다. (자세한 관찰)
·            귀납적 접근방식은 연역적 접근방식의 잘못을 바로잡아 준다. (본문에 토대한 해석)
·            귀납적인 접근방식은 생동감 있는 경험을 하게 한다. (실제적인 적용)
·            따라서 제자훈련과 소그룹 환경에 적합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귀납적 성경연구는 주어진 적은 분량의 본문에 주의를 집중하기 때문에 자칫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함정에 빠질 수가 있다. 이 문제는 본문의 전후 문맥을 살핌으로써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다른 문제는 귀납적인 성경연구를 위해서는 자신과의 투쟁에 이겨야만 하는 작지 않은 문제가 있다. 즉 특별히 한국 사람들은 직관이 발달해 있기 때문에 연역적인 방법에 훨씬 더 익숙하고, 귀납적인 접근법에는 상대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 따라서 오랜 동안 훈련하지 않고서는 귀납적인 성경연구의 참 맛을 보기가 쉽지 않다. 또 방법론 자체가 짧은 본문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것이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귀납적 성경연구의 가장 큰 부담이 이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문제이다. 그러나 귀납적 성경연구는 소요되는 시간의 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질적인 보답을 안겨준다. 기존의 성경에 대한 선지식이 귀납적 성경연구에서 내 자신과의 싸움을 초래하는 한 요인이다. 특정 본문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듣는 설교나 어떤 고정적인 이해 때문에, 귀납적인 방법으로 접근했을 때 기존의 이해와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데, 이 때 자신감을 상실하거나 귀납법적 방법론 자체에 대한 회의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성경신학적인 견지에서 볼 때 상당히 많은 성경구절들이 성경 자체가 아닌 다른 요인들에 의해 오염된 해석에 갖혀 있다.


2. 귀납적 성경연구

2.1 정의

귀납적 성경연구(PBS: Personal Inductive Bible Study)란 성경연구의 한 방법으로 내 자신이 직접 성경 그 자체를 연구하는 것이다. 연구방법은 관찰과 해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용과 나눔까지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귀납적 성경연구는 QT와 같은 목적을 갖고 있는데 둘 사이의 차이점은 PBS는 연구를 요한다는 점이다.

" 경건의 시간을 함으로써 PBS의 원래 목적을 유지시키고
PBS를 함으로써 경건의 시간을 풍성하게 채우게 될 것이다"



2.2 과정
·            관찰(Observation)  해석(Interpretation)  적용(Application)
2.3 필요한 것들
·            성경: 관주성경, 다양한 번역본, 영어 번역본들, 원어 성경
·            공책과 필기구 혹은 컴퓨터
·            성경사전(Dictionaries): 인명, 지명, 개념, 역사적 배경, 지도 등등
·            성구사전(Concordance): 단어의 용례를 보여주는 일종의 사전

3. 관찰

기자의 입장에서 본문에 나타난 사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과정으로서 보이는 현상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이는 현상 이면에 있는 의미를 파악하는 작업은 2단계인 해석과정에 들어가서 할 일이다.

3.1 문체

성경은 아래와 같이 다양한 문예적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 이렇게 다양한 문예적 형식이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방식이 다양하기 때문에 성경이 그 방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이유와, 원저자 성령께서 인간저자들의 지식과 경험을 유기적으로 활용하셨다는 이유 때문이다.
·            내러티브: 모세오경과 12권의 역사서,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것은 사건 속의 대화를 통하여 가르침을 나타낸다.
·            강화체: 선지서의 가르침과 신약의 설교, 그리고 서신서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것은 사람들을 설득하여 그들의 마음과 행위를 바꾸려는 것이다.
·            : 구약의 1/3 정도, 특별히 시가서가 여기에 속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저자의 체험과 관찰을 고백하고, 구약 선지서에 나타난 시 부분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메시지를 예술적인 방식으로 나타낸 것이다. 사건이나 논리적인 논증을 찾지 말고 마음에 일어나는 반응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            예언/묵시: 다니엘서와 같은 선지서와 요한계시록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것은 이상, , 상징, 환상, 이상한 용어를 통하여 역사와 다가올 승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의 비밀을 계시한다.
 선지서는 주로 네 가지 문체를 모두 결합해서 사용하곤 한다.

3.2 문맥
·            전문맥: 처음 성경을 연구할 때는 반드시 책 전체의 구조와 개요를 파악할 것. 두 번째 본문을 연구할 때는 첫 번째 연구본문의 해석정리를 참고. (성경의 전체 배경은 늘 염두에 두어야 함)
·            후문맥: 아직 연구하지 않은 본문이기에 객관적인 사실만 파악할 것.
3.3 구조분석

성경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쓰여졌기 때문에, 그 목적을 본문으로부터 충분히 파악해 낼 수 있다. 주어진 본문의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그 목적을 더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
·            문단나누기와 문단에 소제목 달기
·            중심 단어, 중심 내용을 있는 그대로 써본다.
·            소제목은 상호 조화로워야 하며 제목과 연관되어 있어야 한다.
3.4 분위기

본문의 분위기는 어떠한가를 살펴봄으로써 본문에 기록된 사건이나,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 어떤 상황에서 일어나고 있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3.5 삼위일체의 역할
·            본문에 나타난 성부, 성자, 성령 각 위의 역할과 그에 대한 언급을 찾는다.
·            삼위일체의 사역을 잘 관찰해내면 그것만으로도 본문의 중심사상을 찾을 수 있다.
·            삼위의 사역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이고, 그 사역은 중심사상과 반드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그 사역을 찾아 나열하고, 그것들을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하는 훈련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3.6 강조점

  반복되고 있는 것들을 주의하라(반복).
    한꺼번에 혹은 본문 전반에 걸쳐?
-       주요 용어나 구절, 인물, 사건, 상황, 유형
-      
  서로 비슷한 것들을 주목하라.
    직유(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은유(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서로 상반된 것들을 주목하라.
    비교/대조/반대
    시제의 변화와 문법적 실마리들, 접속사들에 주의하라.
  강조되고 있는 것들을 주목하라.
    할애된 지면
    명시된 목적(20:30-31; 1:2-6)
    순서(예수님의 생애: 세례  시험  사역)
    작은 것/사건  큰 것/사건 혹은 그 반대
    기타 특별히 강조되는 개념이나 표현
  서로 연관된 것들을 주목하라.
    전체와 부분, 범주와 그 개체(1)
    질문과 대답(복음서의 비유들)
    원인과 결과(노아의 홍수, 8:1-4)
    사상의 흐름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주목하라.
    성화를 도울 삶의 원리 등
  여기에서 찾은 내용들은 본문의 중////을 아는 데 핵심이 된다.


3.7 문예 형식에 따른 관찰

3.7.1강화체: 문장의 구문분석

강화체는 일반적으로 신약성경의 서신서들에서 그 전형적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서신서들에서 바울은 성경적 진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자신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처럼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전개된 기록을 강화체라고 한다. 강화체 본문의 구문을 분석할 때는 다음과 같은 사항에 주의하여야 한다.

  문장의 흐름을 알기 위해 접속사들을 반드시 보라.
  주문장과 본동사를 반드시 보라.
  여러 문장들이 연결되어 있을 때, 그 문장들간의 관계를 반드시 보라
  알기 쉽게 본문을 재구성하라

자세한 구문분석의 예는 강화체 PBS 견본을 참고하라.

3.7.2 내러티브: 육하원칙

성경에서 내러티브의 탁월한 예를 찾자면, 룻기를 들 수 있다. 사사들이 다스리던 시대를 배경으로 나오미, , 보아스를 중심으로 한 일련의 등장인물들이 계대결혼과 기업무를 자에 관한 내용을 포함한 플롯에 따라 성경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다. 이처럼 내러티브는 등장인물, 배경, 플롯이 있는 스토리라고 볼 수 있는데, 허구적인 소설이나 영화와는 달리 역사성이 있는 사실들을 성경기자가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기술해 나가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내러티브를 관찰할 때에는 6하원칙에 입각하여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언제?
본문의 상황을 잘 이해하게 한다.
 어디서?
 누가?
 무엇을?
본문의 중심내용(사상)을 찾게 한다.
 어떻게?
본문의 중심내용(사상)을 더 잘 이해하게 한다.
 ?
사건이나 논증 등의 이유를 찾게 한다.
 그 결과?
사건의 결과, 논증의 절정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

6하원칙에 입각한 자세한 내러티브 분석의 예는 내러티브 PBS 견본을 참고하라.

3.7.3 : 수사학적인 표현

구약성경의 1/3 이상을 차지하는 시는 두 가지 중요한 장치가 있다. 그 첫째가 병행법(혹은 평행법)이고, 다른 하나가 시상이다. 병행법은 시구의 배열(a - b 혹은 a - b - c)을 통해 의미를 강화하거나 반복 혹은 재진술, 반대, 대조 등등의 효과를 보는 것이다. 시상은 시인이 자신의 심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어떤 이미저리를 사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병행법
     뒤의 문장은 동일한 뜻이거나 재 진술을 한다(42:1)
     앞의 진술과 반대진술을 한다(1:2)
     앞의 진술을 더 정교하게 다듬어 놓기도 한다(22:2)
     뒤 문장은 앞 문장을 원조한다. 즉 전진하게, 후원하게, 혹은 완성하게 한다.
  이미저리

시의 PBS는 다른 문예 형식에 관한 PBS와 다소 다른 점이 있다. 이 차이점에 대하여는 견본과 함게 별도의 PBS 방법으로 소개한다.

3.7.4 잠언

평화로운 시기에 일상생활 속에서 얻는 지혜로서 일반적인 윤리적인 지침들을 제공해 준다. 잠언은 일반적이고 공적인 진실이지만 이것이 모든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서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는 지혜는 아니다. 따라서 적용을 위해서는 상황에 맞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구성
     상호 반대되는 문장을 갖고 있다(14:16,33).
     앞 문장을 강화하거나 장래에까지 시간을 연장한다(14:26).
     질문과 대답의 형식인데 대체로 질문은 생략한다(11:22; 21:3).

3.7.5 예언서

당시 상황은 매우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염두하고 연구를 해야하며, 시에서도 강화체의 성격을 가진 예언서들이 많이 있음을 주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본문에 나타난 그림, 이미지들을 놓쳐서는 안되고, 해석할 때 상징을 늘 유념해야 한다.


3.8 관찰정리
·            반드시 해야 한다. 각 단락별로 간단명료하게 한두 문장 정도로 관찰내용을 요약한다.
·            전체 줄거리를 재정립하게 하고 해석을 올바로 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            내러티브의 경우 사건의 흐름을 정리한다.
·            강화체의 경우 논리의 흐름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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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개인 성경연구 - 김인희 목사  1998. 11. 16 

이 강의를 통해서 성경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그리고 성경 공부를 앞으로 해야 하겠다는 동기 부여가 생겨나길 원합니다. 저는 이 시간에 에베소서 4:17-24절의 말씀을 가지고 이 두가지를 다 만족시켰으면 합니다. 먼저 본문을 연구하기 전에 우리는 에베소서 전체의 하나님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 3장까지는 원리에 대해서 얘기를 합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유함에 관한 말씀을 1장에서 3장까지 합니다. 하나님의 부유함이 삼위 일체의 하나님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주어졌고 그 부유함을 더욱더 알기 위해서 우리들은 기도해야 된다 이것이 1장의 내용이고, 그리고 그 부유함을 통해서 우리가 받은 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2장에 나오는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이미 앉힘을 받았다(=과거형)는 그것,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부유함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었다는 것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함을 받고, 주님과 함께 부활했다는 것을 통해서 자기 자아로부터 자유함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주님과 함께 보좌 우편에 앉았다는 것을 통해서 무슨 자유를 받는가 하면, 주님이 승천하셔서 승리하셔서 보좌 우편에 앉으셨기 때문에 우리 자신도 승리할 뿐 아니라 장래에 일어날 모든 일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되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님이 갖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선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211절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시민이요 권속이 될 뿐만 아니라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축복을 얻게 되었음 말하고 있습니다. 3장은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왜 감옥에 있습니까? 라고 하는 그런 성도들을 우려하면서 바울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은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이렇게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그러하기에 당신네들이 더욱더 기도 가운데 그 사랑을 알기 원한다는 것이 3장입니다. 이것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유함입니다. 그러면서 4장에서부터 삶이 나오는데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가 나옵니다. 먼저 16절까지는 우리가 하나됨을 힘써 지켜야 함을, 17절부터 나오는 것이 거룩함 가운데 살아야 함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21절부터 가정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69절까지, 그 뿐만 아니라 이런 삶을 방해하는 어둠의 세력들과 영적전쟁해야 함을 610절 이하에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사는 주님이 교회를 세우시고자 주신 자입니다

이런 가운데 오늘 우리가 살피고자 하는 4장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두 가지를 주셨는데, 주셨다라는 동사가 47절과 11절에 두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주님이 주셨는데 앞에서는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다고 그래요. 그리고 또 하나 주신 것은 무엇이인가 하면 교회의 지도자들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지도자 중에 누가 들어가 있느냐 하면 교사가 들어가 있다는 겁니다(물론 목사 곧 교사이다). 그러니까 주님이 교회를 위하여 교사들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사들을 교회에 세우신 것은 교회성도가 무장되어서 주의 사역을 하고 종국에는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지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 자신들은 자기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세움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은사의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사도행전 6장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초대교회 안에 문제가 발생하자 그 문제를 해결할 때 뭐라고 하느냐 하면, ‘우리가 공궤를 일삼는 것이 온전치 않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공궤와 전무는 그 어원이 같습니다. 즉 사도들의 말씀 사역과 집사들의 봉사는 사역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우열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교사 한 분 한 분이 매우 귀중하고 주님이 직접 세우셨음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사실을 말씀을 통해서 염두 해 두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 현장에서 보면, 어린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교사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교사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주의 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식 전달만 하려고 하는 것 보다 우리의 삶과 우리의 인격을 통해서 우리 아이들이 자라 가도록 해야 된다는 이 원칙을 먼저 분명히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교사들이 인격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보다도 주의 말씀을 통하여 내가 먼저 은혜를 받고, 내가 정말 주님을 먼저 닮고, 그런 가운데에서 학생들을 지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예전에 초등부를 섬길 때, 선생님들이 40여분 계셨는데 그 분들을 위해서 제가 개인 성경 연구 특히 귀납적인 성경 연구 방법을 숙달하도록 하기 위해 제가 3년 간같이 씨름을 했습니다. 그런데 빠르신 분들은 1, 좀 늦으신 분은 1년 반이 되니까 주일학교 공과책을 공부하시기 전에 미리 이런 방법으로 공부를 하시고 그 다음에 공과 책을 보면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니까 그 효과가 너무 컸다는 간증들을 들어봤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이 시간을 통해서 계속해서 이런 방법을 가지고 여러분들의 부서에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귀납적성경연구 3단계 - 관찰, 해석, 적용

성경 연구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연역적인 방법이 있고 귀납적인 방법이 있고 이 둘을 통합한 종합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연역적인 방법을 좀 쉽게 말한다면, 예를 들면 사랑이라는 주제를 놓고 성경 신구약을 통해서 사랑을 증명하고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웬만한 성경 공부 교재를 보면 주제별로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귀납적인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직접 주님을 만나 가는 것입니다. 어느 한 주제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결국엔 중요한 중심 주제를 우리가 만나겠지만 계속적으로 다양하게 본문 속에서 주님을 만나고 발견해 내는 가운데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것입니다

* 정의 

먼저 정의는 성경 연구의 한 방법으로 내 자신이 직접 성경 그 자체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연구 방법은 관찰과 해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용과 나눔까지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경건의 시간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둘 사이의 차이점은 
PBS , Personal Bible Study연구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PBS를 하면서 경건의 시간을 무시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경건의 시간이 밑바탕 되어야 PBS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PBS를 하면 할수록 더욱 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불일 듯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감과 경외함을 갖는 것이 경건의 시간이 아닙니까
바로 이것을 보다 더 객관적이고 체계적이고 심도있도록 하기 위해 PBS를 하는 것입니다

A. 관찰 

먼저 관찰은 기자의 입장에서 본문에 나타난 사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보이는 현상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입니다. 선입관을 가지고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설교자들을 통해서 들었던 입장에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읽혀지는 것입니다

1. 문체를 보라 

관찰의 첫 번째는 우리가 연구하려고 하는 본문이 먼저 어떤 문체인지를 봐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66권으로 되어 있지만 거기에는 다양한 문체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설화체인데, 이 설화체는 이야기체로 등장 인물이 나와서 서로 대화를 하는 것이고 그런 가운데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강화체가 있는데, 이것은 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강화나 편지를 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가르침을 주고자 한 말씀들을 말합니다. 설화체와 강화체는 성경의 기본 문체이기에 이 두 가지만 잘하면 성경연구하는데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 그 외에 예언, , 잠언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66권은 마치 오케스트라와 같아요. 각기 다양한 악기들이 제각기 다른 소리를 내면서 하모니를 이루고, 특히 오신 예수님과 앞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해서 하모니를 이루면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한가지 방법으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 모양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성경을 읽고 연구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같은 안목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이클을 맞춰야 됩니다. 설화체를 보는 사이클이 있고 강화체를 보는 사이클이 있고 시가서를 보는 사이클과 잠언서를 보는 사이클이 있습니다. 그런 사이클을 맞출 때 더 정확한 소리를 들을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말씀을 연구할 때 이 성경이 무슨 문체인지를 먼저 반드시 봐야 할 것입니다

2. 전후문맥을 파악하라 

관찰의 두 번째는 전후문맥을 봐야 합니다. 성경을 볼 때마다 항상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에베소서 1장을 연구할 때 제일 먼저 전반부의 문맥은 뭐가 되겠습니까? 11절에서부터 연구를 한다고 하면 전반부가 없습니다. 그럴 때는 배경 즉, 에베소서가 왜 쓰여졌는가를 보는 겁니다. 누가 쓰고 언제 쓰여졌는지는 요즘 웬만한 성경책에는 잘 나와 있습니다. 그런 것을 참조하면서 보면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에베소서를 연구하는 데에 있어서 1장에서부터 6장까지를 한번 쭉 읽어보는 겁니다. 즉 구조파악을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에베소서에 대한 소책자들이나 성경 연구에 필요한 것들을 참고하면 보다 좋은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볼 때 자세히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구조를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1장에서부터 3장까지는 원리이고 4장에서부터 6장까지는 행동이며 그 핵심 내용들은 이런 것들임을 아는 것입니다. 전체 그림을 먼저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2장을 연구할 차례라고 하면 1장이 전문맥이 됩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냥 대충 에베소서 1장의 내용을 삼위일체로부터 오는 부유함이 있다든지 그것을 위해 기도해야 된다든지 이런 식으로 쓰면 안됩니다. 이왕이면 1장을 연구한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하면서 정리를 하는 겁니다. 1장의 내용이 무슨 내용이었는지를 대충 써 보는 것이 아니라 핵심내용을 잘 정리해서 써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내가 정리한 것이 맞나? 틀리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한번 잘 정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 성경 연구입니다. 개인적인 공부이니까 남을 그렇게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나서 3장을 연구하려면 1, 2장의 내용이 뭐였는지 다시 한번 정리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창세기를 가령 49장을 연구한다고 그러면 1장에서부터 48장까지 한번 핵심 흐름을 쭉 훑어야 되죠. 그런데 이것이 한번에는 어렵지만 계속 한 장씩 요약해 나가다 보면 그 흐름을 쉽게 잡을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냐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파편적으로 아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파편적으로 성경을 알면 정확하게 그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지 못하고 자기의 필요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구조와 흐름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면 그 말씀의 의미가 다른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힘과 그 능력이 정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정말 그 능력이 우리 학생들한테 그대로 미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전체적인 흐름들을 한번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를 연구할 때, 5장과 11장에 보면, 족보가 나옵니다. 창세기를 연구할 때 족보를 잘 보면 전후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압니다. 이 두 가지의 족보의 차이는 5장에서는 낳고 죽었다라고 기록된 반면에 11장에는 낳았다는 말만 반복됩니다. 그런데 5장을 보면, 다들 죽는데, 죽지 않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에녹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노아는 홍수심판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당시 청중만 아니라 오늘 우리들에게 매우 유익한 깨달음을 줍니다. 비록 남들은 죽어도, 그리고 홍수심판을 받아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주님과 동행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오늘 우리 모두에게 동일합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후문맥은 우리가 연구를 안 했기에 자세히 쓸것이 없죠. 이 때에는 제일 많이 반복되는 말이나 또는 많은 지면을 차지하는 말을 간단히 쓰는 겁니다. 그러면 가령 에베소서 1장을 연구한 후에 2장을 연구한다고 하면 2장에서 나온 말들 중에서 제일 많이 반복되거나 제일 많은 지면을 차지한 것이 무엇인지 쭉 읽어보시면 금방 감을 잡게 됩니다

3. 문단나누기 및 소제목을 달아라 

관찰 세 번째는 문단 나누기 및 소제목을 다는 것입니다. 전후 문맥을 본 다음에 본문을 보는데, 이 때 우리는 본문을 읽어 가면서 문단나누기를 하면 됩니다. 그리고 제목을 달아야 하는데, 이 때 제목을 달때에도 반복적인 말이나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중심적인 말들을 간단하게 써 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해석을 할 때, 그 내용들을 다시 정리할 것이 있으면 고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반복되는 단어를 간단히 써 놓으시면 됩니다
한 예로, 구약의 느혜미야 1장을 보면, 1장에서 11절까지 읽을 때, 금방 나뉠 수 있는 부분은 1절에서부터 3절이고, 그 다음은 4절부터 보면 나눌 곳이 없이 11절까지 가게 됩니다
이렇게 나눈 다음에 1절에서 3절까지 반복되는 단어는 찾아보면 특별하게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단어는 유대 사람과 예루살렘의 형편을 물은즉 어떠하더라 이렇게 나와 있기 때문에 소제목을 유대 사람과 예루살렘의 형편이라고 잡을 수 있습니다
4절에서 11절에서 많이 나오는 단어는 기도입니다. 계속 기도라는 말이 반복되고 또 전체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기도라고 쓰면 됩니다
이렇게 하다가 해석하면서 그 내용이 들어나면, 1절에서 3절을 느헤미야의 관심, 4절에서 11절을 느헤미야의 기도로서 소제목을 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4. 분위기를 파악하라 

관찰의 네 번째는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구하는 본문이 권면인지 위로인지 명령인지 책망인지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본문의 분위기들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느헤미야 1장의 분위를 보면,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단어들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능욕이라든지 훼파라든지 또 울며 금식한다든지 이런 말들을 볼 때 그 분위기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굉장히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이런 몇 가지의 단어들을 통해서 분위기를 쉽게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여기서 엄청난 하나님의 진리들이 많이 나오고 나중에 해석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5. 강조점을 찾으라 

관찰에 있어서 다섯 번째는 강조점을 찾는 것입니다. 강조점을 찾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중심 사상과 중심 내용을 찾기 위함입니다. 중심 내용과 사상을 알기 위해서 반복되는 말이 무엇이며 비교 대조되는 말이 무엇이고 많은 지면을 차지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면서 중심 내용과 사상들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강조점에서 꼭 봐야 할 것이 1) 반복, 2) 비교, 3) 대조, 4) 많은 지면을 차지하는 것, 5) 본문의 본동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면 본동사를 찾지 않으면 종속절을 가지고서 본문의 메인 아이디어라고 해서 자꾸 엉뚱한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본동사가 중심 사상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때문에 성경을 보면 본동사를 항상 찾아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을 가지고는 본동사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분사도 본동사 같이 쓰여 있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그래서 좀 어렵더라도 영어 성경을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영어 성경 중에서 NASB라는 성경이 있습니다. 해석할 때에는 NIV가 좋고 관찰을 할 때에는 NASB가 좋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쓰여진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순서하고 똑같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좀더 열심히 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은 NASB를 보시면서 본동사만 찾아 보세요. 괜히 문장의 종속절이 뭐고 연결어가 뭐고, 등등 이런 것을 찾으면 힘이 듭니다. 그러나 6) 문법적 실마리들은 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좀 더 깊이 들어가면서 하면 되는 것이고 우선은 본동사만이라도 찾아서 성경의 중심 사상과 중심 내용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이 사실을 파악하면 됩니다
그럼 동사의 중요성을 잠깐 보면 빌립보서 22절을 보겠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21절의 얘기는 만약에 우리 안에 권면과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다면이 말은 뭐냐 하면 너희가 지금 이런 것들을 받고 있지 않느냐?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하면서 2절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2절에 있어서 본동사는 뭐냐 하면 마음을 같이하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뒤에 보면 2절이나 3절이나 4절에 보면 동사 같은 말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본동사는 하나입니다. 마음을 같이 하라. 이것을 중심으로 네 개의 분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같이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면, 같은 사랑을 가지면서, 한 마음을 품으면서 그리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서로 돌아보면서 한마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좀 더 보면 5절에 나와 있는 내용들이 2절과 연관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한 마음을 품기 위한 하나의 샘플로 예수님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시 12절부터 그러므로한마음을 품는 것에 대한 권면이 이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동사를 찾는 것은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에베소서 417절 이하를 보겠습니다. 17절에서부터 19절과 20절에서부터 24절이 대조가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주절의 동사는 20절입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놓고 22, 23, 24절은 to부정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심령이 새롭게 변화를 받아서 새 사람을 입으라 너희들은 그렇게 배우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들은 어떻게 옛사람에게 있느냐 라는 본문입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예들이 25절에서부터 얘기하고 있습니다. ‘옛 것을 버리고 이렇게 살아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배우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개인 성경 연구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배우지 않으면 우리의 심령이 새로워질 수도 없고 옛 사람을 벗어버릴 수도 없고 새 사람을 입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 열심히 연구해야 됩니다. 그래서 저의 목회자 모임도 88년도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모여서 하나님 말씀을 연구한 것을 나눕니다. 지금까지 십여년 동안 꾸준히 했습니다. 왜냐하면 교역자들이 무엇보다도 주님을 앎으로 심령을 새롭게 변화 받고 우리가 앞 뒤 모습이 똑같을 수 있도록, 강단 위에서나 강단에 내려와서도 똑같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우리 인격을 전달하고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손길을 맛보도록 해야 할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는데 바로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배워야 합니다. 그랬을 때 우리의 심령이 새로워질 수 있고 옛사람을 비로소 죽일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배우지 못하면 옛 성품을 못 죽입니다배우지 않기 때문에 자꾸만 옛성품 위에 새성품을 입으려고 합니다. 성경 연구를 통해서 자꾸 주님을 알아 가야 됩니다. 이만큼 본동사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것을 알면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됩니다

6. 육하원칙으로 보라(설화체인 경우

관찰의 여섯 번째는 육하원칙의 질문을 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이야기체, 설화체의 경우에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설화체(=이야기체)를 볼 때 이 육하원칙을 가지고 보면 아주 분명하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보면 누가, 언제, 어디서는 본문의 상황을 알게 합니다

이렇게 관찰을 하는데 여섯 가지의 요건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관찰은 길수록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관찰을 정확하게 해야지만 해석을 정확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관찰을 하면 성경연구 50%는 끝난 겁니다. 그래서 아주 많이 한 만큼, 자세히 한 만큼 성경을 보다 더 잘 알 수가 있습니다

* 설화체가 아닌 경우 보는 방법 

1. 강화체 
만약에 연구하는 본문이 설화체가 아니라 다른 장르를 가지고 있을 때는 어떻게 되느냐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강화체를 보겠습니다. 강화체를 자세하게 분석을 하라고 하면 어렵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를 보면 쉽습니다. 접속사라든지 그런 것을 먼저 보고 또 하나는 아까 말한 본동사 이 두 가지를 꼭 봐야 합니다. 특히 강화체의 경우에는 꼭 접속사와 같은 문법적 실마리를 주는 것하고 본동사는 꼭 보셔야 됩니다. 그 두 가지만 보더라도 뿌연 안개가 싹 걷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2. 시편 
그 다음에 시편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시가 3분의 1이나 쓰여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약의 분량만큼 쓰여진 것이 시입니다. 그런데 그 시를 볼 때 그냥 흑백으로만 보려고 한다면 시에서 오는 그런 맛을 잘 보지는 못합니다. 시를 볼 때에는 시가 늘 연과 병행법으로 쓰여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병행법에서 세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하는데 먼저 시편 73편을 보겠습니다. 1절을 보면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그런데 우리 성경에는 사실 정확하게 잘 안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성경 예를 들면 공동 번역이나 현대인의 성경이나 이런 것을 보면 정결함이라는 단어가 다시 재 반복되어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번 설명한 다음에 다시 그것을 다른 말로 바꾸어서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편에서는 병행법이 있는데 뒤에 문장은 앞의 말과 문장을 다시 다른 말로 강조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떤 때는 확대로, 반대로, 보충설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표현된 낱말은 다르지만 병행법으로 그것을 해석할 때는 같은 의미를 가지고 해석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단어가 다르다고 해서 다른 뜻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병행법으로 쓰여졌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시편 12절을 보겠습니다. 시편 1편을 보면 둘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시편 1편 전체가 그렇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우왕좌왕 하는데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복있는 사람은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들을 1장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악인과 의인과의 대조가 1절에서 2절에 나올 뿐만 아니라 1장 전체에서 악인들의 삶과 의인들의 삶이 대조로 그려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병행법에서 반대 진술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시편 22편을 보겠습니다. 2절을 보면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부르짖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뒤의 문장이 앞문장을 보다 더 자세하고 세세하게 기록하는 병행법으로 쓰인 것입니다. 뒷 문장은 앞 문장을 원조합니다. , 전진하게 하거나 후원하게 하거나 완성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편을 볼 때 우리가 가져야 될 방법입니다. 시편을 볼 때 반복을 찾고 비교를 찾고 대조를 찾기 보다는 병행법을 가지고 보아야 합니다

3. 잠언 
잠언을 보겠습니다. 잠언은 문화적으로 평온을 유지했던 일상생활 속에서 얻은 지혜를 가지고 일반적인 윤리 지침들을 제공합니다. 잠언은 일반적이고 공적인 진실이지만 이것이 모든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서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는 지혜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적용을 위해서는 상황에 맞는 분별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한 예가 무엇이냐고 하면 똑같은 지혜서 라고 하더라도 잠언의 지혜와 욥기의 지혜가 다릅니다. 욥의 세 친구가 욥을 정죄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세 친구가 하는 말이 맞는 말인가요 틀린 말인가요? 말 자체는 맞는 말이고 성경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세 친구들의 말들이 다 잘못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 세 친구가 가지고 왔던 그 지혜는 바로 잠언식 지혜였습니다. 일종의 인과응보 적인 지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욥의 지혜는 우리가 설명하지 못하는 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이 있을 때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어려움을 겪어?’ 그러면 그것은 잠언식 지혜로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러나 우리들이 항상 잘못해서만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정말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주어진 고난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욥기적인 지혜죠. 그러니까 우리도 문제를 풀 때마다 나에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대체 무엇을 잘못 했기에 이러나이렇게만 볼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면을 다 봐야 합니다. 이 부분은 하나님에게 맡기도 인내해야 되겠다든지 이 부분은 내가 고쳐야 되겠다든지 분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언의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적용을 하면 안 됩니다. 잠언은 그 시대에, 더구나 평온한 가운데 나온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긴박한 시대 속에서 나온 것들은 그와 같지 않습니다. 긴박한 시대 속에서 나온 메시지들은 주로 예언서들이에요. 굉장히 강하고 격렬하고 강하고 무섭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것들을 적용할 때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잠언의 구성을 잠깐 보면 이것도 물론 시가서의 병행법과 아주 유사합니다. 잠언 14장을 보겠습니다. 16절을 보면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여기서 보면 잠언인데 반대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잠언에서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33절도 보면 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에 머물거니와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것은 나타나느니라여기서도 역시 반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반면에 26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여기에서 그 자와 그 자녀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앞 문장을 강화하거나 그 시간이 연장이 되고 있다는 거죠. 그런 형식이 잠언서에 많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1122절을 보겠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고리 같으니라여기에서 아니하는 것은 이것은 질문을 했다는 것인데, 본문에는 질문의 내용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잠언은 질문이 있고 답이 나온 거라는 거죠. 그런데 많은 부분에 있어서 질문이 다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정의가 나오고 풀이가 나오면 앞의 말이 생략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글들을 볼 때 질문을 주면서 읽어 나가면 잠언이 파편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일정한 형식을 가지고 연결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213절을 보겠습니다.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여기에서 질문을 한다면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과 제사를 드리는 것 중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는 내용이죠. 이렇게 잠언을 보시면 됩니다. 처음에 한번에 외우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이것을 한번 찾아보시면 머리 속에 입력이 됩니다

4. 예언서 
다음에 예언서를 보겠습니다. 예언서를 볼 때는 당시 상황이 매우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염두하고 연구를 해야 하며 강화체의 성격을 가진 시들이 예언서에 많이 있음을 주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본문에 나타난 전체 그림 이미지들을 놓쳐서는 안되고 해석할 때 상징을 늘 유념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관찰을 하면서 반복, 비교, 대조를 찾다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갈기갈기 쪼개 놓게 됩니다. 그러나 반복, 비교, 대조를 보면서도 전체 숲을 보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전후 문맥의 흐름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반복, 비교, 대조를 보아야지 그러한 흐름 없이 이것들을 보면 그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특히 이런 예언서 같은 것을 볼 때 예언서에 나타나는 그림들이 있습니다. 그 그림을 쪼개려고 하지말고 분석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런 안목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그림들이 나왔을 때 문자적으로 해석이 안되면 다 상징들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뒤바꿔서 무조건 예언서들은 다 상징이라고 해서 다 상징으로 해석을 해 버리면 근거 없는 말들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상징이라고 하더라도 먼저 문자적으로 문법적으로 먼저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해석이 되면 되는 것이고 해석이 안됐을 때는 그 때 비로소 혹시 상징이 아닌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모든 성경이 상징으로 되어 있고 비유로 되었다고 생각하는 성경 공부 방법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우선 관찰에서는 있는 그대로 문자적으로 그것을 보는 것이 먼저 필요합니다. 그래서 관찰은 기자가 쓴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실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7. 관찰을 정리하라 

관찰의 마지막 일곱 번째로 해야 할 것은 관찰정리입니다. 많은 것을 찾았기 때문에 그 것을 정리해야 합니다. 정리를 하되 만약 사건의 순서가 있다면 순서대로 정리를 해야 됩니다. 그러나 강화체 같은 것들은 사건의 연대기적인 순서가 없습니다. 그러나 원인 결과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원인 결과를 있는 그대로 쓰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반복되고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느혜미야 1장을 정리한다면 수산궁에 있을 때 느혜미야는 유대인과 예루살렘의 형편에 대해서 듣고 수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였다이런 식으로 관찰 정리를 해 놓으면 본문의 내용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반복, 비교, 대조를 통해서 나타난 중심 내용과 중심 사상들을 잘 드러나도록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관찰입니다


B. 해석 
  
관찰을 통해 전체적인 것을 보고 나면 이 성경이 쓰인 목적이 뭘까? 저자의 의도가 뭘까?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서 뭘 우리들에게 알게 하기를 원하시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알아 가는 것이 바로 해석입니다
해석의 정의는 저자의 의도를 알아 가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해석할 때 항상 유념해야 할 것은 우리가 관찰 때 봤던 그 문맥을 항상 유념하시면서 해석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해석을 할 때 모르는 단어 하나를 성구 사전을 찾아서 읽듯이 그렇게 하면 본문의 의미가 그렇게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말도 상황에 따라서 그 뜻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성경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전후 문맥 속에서 이 단어의 의미가 뭔가 이것을 항상 물어 봐야 합니다. 그러나 개인 성경 연구이기 때문에 누가 보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스스로 자신 있게 전후 문맥 해석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PBS가 적용과 나눔을 원칙으로 하니까 옆의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나 혼자만 다른 길로 가고 있으면 빨리 감을 잡고 돌아와야 합니다

1. 해석의 세 가지 원칙 

해석을 할 때 세 가지의 원칙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자연스러운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 본문의 영적인 의미가 뭘까? 혹시 다른 뜻이 없을까? 이렇게 생각하기보다도 그 이전에 자연스럽게 쭉 보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너무 고어이기 때문에 현대인 성경을 같이 읽으면 참 좋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읽으세요. 한 예를 들면 요한복음 3장을 보면 니고데모가 예수님 앞에 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질문을 하지 않습니까? 그 때 니고데모는 밤에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떤 사람들이 밤은 니고데모의 영적 상태라고 말을 하는데 일차적으로 먼저 중요한 것은 자연스러운 의미입니다. 그가 관원이었기 때문에 하루종일 일을 열심히 한 다음에 퇴근길에 들렀구나 이런 식으로 우선 자연스러운 의미로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다 해석을 한 다음에 요한복음에 나와 있는 밤의 의미가 빛과 대조 가운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깊이 생각을 하면 좋지만 우선은 자연스럽게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말의 의미는 신학적으로 해석하기 전에 먼저 문자적으로 해석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좀 어려운 말이지만 조금 성경 공부를 하신 분들을 보면 또 배우신 분들을 보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배우셨고 언약에 대해서도 배우셨고 남은 자에 대해서도 배우셨고....즉 몇 가지 들은 것을 가지고 해석을 하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그런 단어들이 매우 중요하지만 먼저는 있는 그대로 자연스러운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 본래의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당시 상황 속에서는 어떤 의미로 쓰여졌을까를 한번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 31617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이 요절을 해석을 하려면 먼저 전후 문맥 가운데 해석을 해야 합니다. 우선 이런 구절만 가지고 해석을 하면 예전에 설교자들을 통해 말씀을 배울 때, 음행을 하거나 우상에게 절하는 것은 성전을 더럽히는 거라고 배웠다고 이 본문을 자신이 그렇게 들어왔던 지식을 가지고 얘기해 버리면 안됩니다. 항상 문맥 안에서 해석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전후 문맥을 보아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 1장에서부터 4장까지의 내용은 그 당시 고린도 교회에 있는 분쟁, 분열에 대해서 지금 권면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분쟁과 분열이라는 권면 속에서 본문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31절에서 4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다. 너희들은 육에 속한 자다. 어린 아이다. 젖만 먹는 자다. 너희는 육신에 속한 사람이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사실 고린도 교회가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로 하여금 신령한 자를 대함과 같이 안 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아홉 가지 은사가 있다고 신령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령하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함을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특별히 그들이 성령의 아홉 가지의 은사를 갖고 있는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왜 어린 자이고 육에 속한 자고 젖을 먹을 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는지 3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그러니까 신령하다는 말을 정확하게 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4절에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이렇게 분쟁이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바울은 6절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그러니까 각각의 은사에 따라서 그리고 상대방의 은사를 인정하면서 그러나 하나님이 자라나게 하신다는 원칙을 가지고 사역하라는 것을 봅니다. 그러니까 나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말들이 쭉 나오면서 뒤를 보면 2223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라고 합니다. , 성전을 더럽히는 것은 이러한 전후 문맥에서 보면 시기와 분쟁을 하는 것입니다. 시기와 분쟁하면 교회는 나뉘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가 십자가로서 하나를 만든 것을 시기와 분쟁을 함으로서 나누어 버린다면 그리스도의 몸이 나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성전이 더러워진다는 것입니다. 즉 교회 안에서 상대방을 용납하지 않고 이해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간음을 하면 성전이 더럽혀진다는 것은 고린도 전서 618절에 음행을 피하라고 하면서 19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이 본문에서는 음행을 하면 성전이 더러워집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시기와 분쟁이 있으면 교회가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본문을 볼 때 전후 문맥 속에서 본래의 의미를 찾으면 보다 더 그 뜻이 굉장히 강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듣고서 내가 분쟁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말을 하면 안됩니다. “우리 교회 그 전도사님은 너무너무 좋더라그러면서 어느 전도사님에 대해서는 말을 안 해요. 그러면 그 전도사님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심는 자가 있고 물주는 자가 있는 것입니다. 다 각기 은사에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대로 하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남의 은사와 비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문맥의 중요성을 위해 하나의 본문을 또 볼까요? 시편 66편입니다. 18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여러분들은 이런 말씀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죄의 문제를 고민하게 되고 회개를 먼저하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좋은 태도입니다. 그런데 머리털보다도 더 많은 죄를 어떻게 회개를 다하겠습니까? 우리가 기도를 아무리 해도 머리털 보다 많은 죄가 다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를 포기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으며 내 기도 소리에 주의하셨도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저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품으면 듣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면 그런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한다면 우린 평생 나가지 못 할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단번에 영원히 다 없애 주셨는데 계속 죄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마음은 언제나 주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복음을 가지고 나아가되 항상 우리들이 정결한 심령 속에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가지만 강조함으로서 자녀로서 마땅히 하나님 앞에 당당히 담대히 나아가는 그 본질 자녀로서의 그 권세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죄를 범하면 범할수록 하나님 앞에 빨리 뛰어 나가는 것입니다. 잘 못하면 빨리 나가는 사람이 그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일관된 내용들을 알고 신앙을 갖는 것이 해석의 3번째 원리인 것입니다

결국, 문맥과 배경 아래서 본문을 보되, 먼저 어려운 인명과 지명과 문장들을 해결하되 자연스러우면서 본래의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2. 해석도 정리하라 

해석을 했으면 해석도 정리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해석 정리를 할 때는 중심 사상과 논지를 따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느혜미야 11절에서 3절에서 유대 사람과 예루살렘의 형편에 대해서 물어 보는 것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유대 사람은 능욕을 받았고 예루살렘은 훼파됐다고 나옵니다. 바로 이것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느헤미야입니다. 즉 그 능욕 받은 것을 어떻게 만회 할 것인가 그것이 8장에서부터 13장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재건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성벽이 훼파된 것을 재건하는 것은 1장에서 7장에 나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성벽을 재건하자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4절에서 11절에 보면 기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을 정리 할 때 4절에서 11절을 보면 기도에 대한 말씀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먼저 하나님을 알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늘의 하나님이요, 심판의 주시며 또 우리 역사 속에 개입하셔서 만나 주시는 분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올바로 알 때 하나님을 경회함이 생기게 됩니다. 경외는 죄를 미워하고 날마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에 계신 심판 주를 알 때 죄를 미워하고 되고, 또 우리를 만나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 알 때 더 친밀감을 가지고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런 분임을 알고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기도할 때 우리는 동질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상들의 죄를 나의 죄로 느혜미야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는 동질화를 하는 가운데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사실 동질화를 하지 않으면 중보 기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동질화를 할 때, 상대방의 아픔을 알 때 그것이 중보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말씀에 의지해서, 여기에서는 언약이라고 얘기했는데 언약을 기억하면서 말씀의 근거로 기도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청컨대 기억하소서7, 9, 11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 교회를 부흥시키고 내 기관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사람을 모아서 같이 협력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그래서 11절에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렇게 여러 사람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다섯 번째 기도는 핵심을 파악해야 됩니다. 4개월 동안 기도한 다음에 느헤미야가 안 것은 성벽과 이스라엘 재건의 문제의 키는 아닥사스다 왕만 바뀌면 된다는 것을 알고 2장에서는 왕 앞에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기도할 때에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핵심적인 것을 놓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을 알고 동질화시키는 가운데 말씀을 근거로 해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핵심을 가지고 기도해야 된다는 것을 해석 정리를 통해서 정리를 해보는 것입니다


C. 적용 

적용은 깨달은 교훈을 우리의 삶 속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냥 해석으로서 끝나 버리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원래의 기록 목적이 우리의 지식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에 있기 때문에 해석으로서 끝나면 지식으로만 끝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해석하려고 들지 말고 순종하려고 성경을 봐야 합니다그래서 적용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강조할 것은 PBS이기 때문에 진실해야 합니다.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보여야 합니다. 순종은 모든 적용의 기초이기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깨달았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적용은 단위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WHAT(=중심내용과 사상)을 중심으로 적용하라는 것입니다. 경건의 시간을 하면서 경건의 시간을 계속 하지 않는 분들의 공통점을 발견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1년 간 경건의 시간 세미나를 하면서 사람들을 일일이 1년 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경건의 시간을 하다가 그만 두는 이유는 적용을 할 때 본문에서 나에게 마음에 와 닿는 그 본문을 가지고 그 즉시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 죄송하다고 하다가 계속 죄송하게 할 바에야 아예 안 하는게 낫다고 생각을 해서 안 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더라구요. 그러니까 QT를 하면서도 적용이 다분히 개인 중심 속에서 적용을 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적용의 범위가 좁고 적용의 한계가 있고 그러니까 시간이 지나면 못하는 거예요. QT를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매일 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죠. 그런데 그것을 제가 깨달은 바대로 바꾸어 봤어요. WHAT을 중심으로 적용을 시키는 것입니다. 중심내용을 가지고 먼저 적용을 시키는 것입니다. 성경의 거울 앞에 나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경건의 시간을 하면서 읽은 다음에 그 말씀대로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 안에서 다 찾은 다음에 해석 정리한 그 내용을 가지고 먼저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 같은 경우에는 1절에서 3절에 그 성에 있었다는 얘기는 뭐냐면 지위가 보장된 편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런 수산 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관심은 자기 민족의 재건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에게 어떻게 적용해야 하냐면 오늘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나의 반, 나의 기관의 부흥과 재건에 관심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먼저 적용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의 반과 나의 기관과 넓게는 우리 교회와 한국 교회를 세계 선교에 대해 나는 관심이 있는지를 질문을 던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관심이 있는 사람이 기도를 한다는 거예요. 기도는 아무나 못하죠. 자기 밖에 있는 것은 관심이 없으면 못합니다. 그런데 더구나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부름 받았고 더구나 교사로서 부름 받았다면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되잖아요. 관심이 있다면 기도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메인 아이디어 WHAT을 중심으로 적용하다 보면 우산 가지처럼 본문 전체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적용을 할 때 그냥 즉각식 적용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먼저 WHAT을 중심으로 적용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적용을 할 때 감사 찬양과 회개와 간구가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와 순종을 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내가 주님의 부흥인 내 기관의 부흥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지금까지의 관심 없음을 용서해 주세요이렇게 기도하면 안됩니다. 이렇게 하면 다음에 가서 또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적용은 구체적으로 즉 육하원칙으로 해야 합니다. 즉 회개도 육하원칙을 응용해서 회개를 하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관심이 없었습니다그렇게 얘기할 것이 아니라 육하원칙으로 나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왜 내가 관심을 갖지 못했는지, 걸림돌이 무엇인지, 현재 나로 하여금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는 원인들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그 원인을 찾으면 이제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걸림돌은 오늘 현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래를 보는 것입니다. 앞으로 재건과 부흥에 관심을 갖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육하원칙에 따라 적용하는 것입니다

첫번째 적용을 할 때는 언제나 전체 메인 아이디어 중심 주제를 가지고서 적용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을 먼저 하면 그 다음은 다 연결되어서 균형있게 적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식으로 성경을 묵상하면 내가 날마다 주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자꾸만 회개해야 할 것이 많아지고 자꾸 새사람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주님을 닮고 더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 모습을 우리 아이들이 보고 배워 나가게 된다면 얼마나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모습이 되겠습니까. 이것이 관찰, 해석, 적용에서 나타난 내용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중심내용을 육하원칙에 따라 적용하되 먼저 현재부터 보고, 과거와 미래를 봐야 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잘 순종하고 있다면 감사찬양할 것이요, 만약 내가 불순종하고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을 발견하고 주님 앞에 맡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렇게 할 때 우리는 말씀을 더욱 더 사모하게 되고 주님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외의 적용에 도움을 주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버려야 할 죄가 무엇인가그 다음에 주장해야 될 약속, 따라야 될 본, 순종해야 될 명령, 피해야 될 거침돌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 성경연구를 잘하려면.... 

귀납적 성경 연구는 경건의 시간으로 하나님과 친밀해 가는 것을 기본으로 해서 연구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연구하는 것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적용과 나눔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깨달은 것이 검증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내가 받은 은혜들을 피차 가르치고 권면해야 됩니다. 그래야지 함께 자라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으로부터도 자라지만 지체를 통해서도 자라 가야 된다는 성경의 원리입니다. 그런 원칙에 의해서 나누라는 거죠. 그러나 없으면 선생님들과 먼저 하세요. 그리고 내가 속해 있는 학생들과도 할 수 있죠

그 다음에 두 번째 일정한 소그룹에 참여해야 합니다. 저도 지금 10년 넘게 해 오지만 매주 월요일날 하기 때문에 피곤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래도 하는 것입니다. 7시간 8시간씩 PBS를 해서 모임에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빈 광주리로 나올 수 없잖아요. 피차 가르치고 권면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가르칠 것을 위해서 준비하게 됩니다. 그러면 보다 더 은혜 가운데 성경연구를 잘 할 수가 있습니다

세 번째 66권을 다 해보겠다는 각오를 갖자는 것입니다. 우리 선생님들이 일주일에 한 장씩 연구를 하면 23년이 넘게 걸립니다. 이것을 매일 할 수는 없지만 일주일에 한번 최소한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과는 이렇게 하신 다음에 공과책을 보시면 말씀이 살아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런 식으로 선생님들을 교육시키고 해 보니까 그 효과는 더욱 큰 것을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소한 공과만이라도 시작해서 나중엔 성경 한 권을 잡고서 계속 꾸준히 해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20여년 안에 끝내실 수가 있습니다

한가지 끝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들의 교육은 우리 학생들에게 전인격적으로 교육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지, , 의로 균형 있게 자라 가게 해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들이 먼저 지, , 의로 균형 잡힌 가운데 자라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 바로 말씀을 통해서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 한 권을 연구하는 것이 왜 중요하냐면 성경 한 권을 보면 유다서나 요한 1서나 어디 한 권을 보던지 하나님과 지체와 자기와의 관계에 대해서 굉장히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도 하나님과 지체와 나의 관계입니다. 그러니까 균형 있는 성숙을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원하고 계십니다. 모든 성경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연구하다가 보면 선생님들이 균형 있는 성숙을 갖게 되고 가르치는 것이 균형 있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지체와 자기의 관계성 속에서 우리 아이들을 자라 가게 합니다. 이런 교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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