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7일 월요일



성경해석의 일반법칙

- Robert J. Sargent -

   혼란이 오늘날 기독교계를 지배하고 있다. 사탄이 혼란을 이용하여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복음의 진리로부터 눈 먼 상태로 유지시킨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실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모든 계획"에 무지하며 특별히 교회의 진리와 관련하여 그러하다.
   이 혼란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완전한 해석에서 유래한다. 교리상의 많은 차이는 성경적 해석방법에 그 뿌리를 둔다. 따라서 성경해석학의 기본 원칙에 근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I. 성경 해석의 황금율

  성경해석의 모든 원칙 중에서 최고의 원칙은,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라"  이것이 베드로후서 1:20 "...성경기록의 어떤 대언도 사적인 해석으로 된 것이 하나도 없나니"의 의미이다. 즉 성경 구절은 성경의 다른 부분과 비교하여(by comparing) 해석해야 한다(고전 2:13d).

    A. 성경의 사사로운 해석

        1. 사사로운 해석은 어떤 성경 구절을 성경의 나머지 부분의 관주(Reference)와
            "분리하여(isolated)", 관주와 상관없이 해석하는 것이다.
         
           예. 요한복음 16:23을 사사로이 해석할 경우, '그리스도인이 원하는 것을 받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은 단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다' 라는 가르침으로 쉽게
                인도된다. 그러나 성경을 성경으로 비교할 때, 기도는 조건적이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a) 그분의 뜻에 따라 구하는 것이며(요일 5:14,15),
                (b) 믿음으로 구하는 것, 곧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구하는 것(약 1:6)이며,
                (c)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로서 구하는 것(요 15:7), 등을 뜻한다.
 
        2. 사사로운 해석은 해석하는 사람이 자신의 정의에 따라 성경의 의미를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그러한 해석은 해석하는 사람의 교파적, 전통적, 철학적 성향을 반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요한복음 3:5 - "사람이 물에서 나고 또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이 구절에 대한 일반적인 사사로운 해석은 침례가 구원에 필수적이다는 것이다.
          이는 캐톨릭, 켐벨파 및 많은 프로테스탄트의 입장이다.

          황금율을 적용한 올바른 해석은 다음과 같다.
          a. 많은 다른 성경기록들이 분명하게 다시 태어남과 침례를 분리한다. 예. 고전 1:17a
          b. 문맥을 보면 육체적인 출생을 가리키는 것을 알 수 있다(6절) - 하나님의 영의
              역사와 양수가 대조된다
          c. 물의 상징성(엡 5:6)은 새로운 출생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영의
              역사이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벧전 1:23을 볼 것.

    B. 황금율의 예외
        이 황금율에는 예외가 없다. 그러나, 성경에는 단 한 번 쓰이는 단어가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 이 경우 직접적인 대조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경우에는

        1. 문맥(전후 관계)을 조사하라.
           흔히 전후 문맥에서 특별한 단어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a. sackbut(중세의 트롬본) 이란 단어는 다니엘서 3 장에만 등장한다
               (5,7,10,15 절). 문맥에서 볼 때 이 단어가 악기라는 것이 분명하다.
           b. 창세기 10:25c "..이는 그의 날들에 땅이 나뉘어졌음이요.." 자체만 고려할
               때는 이상하게 보이며, 어떤 이는 대륙이동설이라는 구조지질학 이론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문맥은(창 10:32) 창세기 10 장에서
               설명되고, 창세기 11:1~9에서 부연된 바와 같이, 분명히 인류가 흩어지는
               것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2. 사전(辭典)을 조사하라.
           a. 단어가 권위역 KJV에 있는 고어(古語) 중에 하나인 경우, 번역자가 의도한 의미를
               알기 위하여 옥스포드 영어 사전을 참조하라.
           b. 단어가 명사인 경우, 성경 사전이 그 뜻을 밝혀줄 것이다. 특히 성경에 나오는
               지방의 위치와 목적에 적용된다.
              sackbut은 분명히 하프 모양의 악기였다.

         하나님의 말씀의 모든 필수 교리는 수많은 성경 관주와 구절에 근거한 것이다. 성경에
       언급된 것 중 어떤 것은 완전히 이해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결코 교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영광의 이 쪽 면에 대한 고찰의 영역 안에 남을 것이다. 이것에
       관한 한 예가 출 28:30의 우림(Urim)과 툼민(Thummin)이다. 이 구절과 기타 관주
       (레 8:8, 민 27:21, 신 33:8, 삼상 28:6, 에스라 2:63, 느 7:65)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이들이 하나님께서 대성직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그분의 뜻을 나타내셨던 몇 가지
       방법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무엇이며 어떻게 작용하였는지에 대하여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C. 추론(Corollary)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무오(無誤)하며(inerrant) 오류가 없다(infallible) - 시 119:160,
      요 17:17 - 따라서, 성경의 어떠한 구절도 다른 구절과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믿지 않는 자는 항상 성경이 모순으로 가득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 조차도 속임을 당하여 권위역 (KJV)이 필사에서, 필경자 또는 번역의
      오류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성경이 몇 가지 외형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황금율을
      적용하면 어떠한 문제나 난제 본문도 해결할 수 있다. (기억하라, 어떤 성경기록은
      우유와 같다 - 쉽게 이해하고 소화가 된다 ; 대부분의 성경기록은 단단한 음식과 같다.
      - 부지런히 상고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성경기록들을 상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더 나은 번역"을 얻기 위하여 헬라어나 히브리어로 갈 필요가 없다.

       눈에 띄는 모순과 난제(難題)의 몇 가지 예는 다음과 같다. :
       1. 은혜(Grace)와 행위(Works)
          구원의 문제에 관하여 바울과 야고보의 글 사이에서 오랫동안에 걸쳐 모순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예를 들면,

          · 로마서 4:5 -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게 하시는 그분을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
          · 약 2:24 - "너희가 이제 알거니와, 사람이 행위로 의롭게 되고, 믿음으로만이
                            아니니라."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우리 안에(in)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에 관해 말한다는 것을
         알면(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이다), 이 외형적인 모순은 해결된다.
         야고보서는 우리로 말미암은(through)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말한다.
         빌립보서 2:12,13은 이들 양면을 나타낸다. 베드로후서 1:3~9을 볼 것.

          구원하는 믿음은 행하는 믿음이다. 그렇지 않으면 죽은 믿음이다.

       2. 이집트의 이스라엘인
          창세기 46:26(66명)과 창세기 46:27(70명)을 사도행전 7:14(75명)과 비교할 때,
          숫자적인 불일치가 있다고 추측한다.

          66 명은 야곱과 함께 이집트에 온 자들이다. 이들 66 명과 야곱, 요셉, 요셉의 두 아들을
          합하여 70 명이 이집트에 있었다. 그리고 요셉의 4 손자와 1 명의 증손자가 추가되어
          (창 50:23, 대상 7:14-22), 요셉과 함께 있었던 자들은 모두 75명에 달한다.

      3. 귀먹은 독사
          귀먹은 독사에 관해 말하는 시편 58:4에 대하여 과학적 오류가 있다고 추측한다.
         여기서 귀먹음(deafness)은 5 절에서 주술사의 음악을 따르는 것을 거절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이는 사람이 완전한 육체적 청각을 가질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영적으로 귀머거리일 수 있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4. 성전 부지의 구입
          삼하 24:24에 숫자적인 오류가 있다고 추측한다. 여기서 다윗은 아라우나의 탈곡장을
         은 50 세켈에 샀다. 역대상 21:25에서 다윗은 금 600 세켈을 지불했다. 두 구절을
         주의하여 읽으면 다윗이 은 50 세겔을 지불하고 산 것은 탈곡장이고, 금 600 세켈을
         지불하고 산 것은 탈곡장 장소인 것을 알 수 있다.

       5. 아브라함의 구매
          사도행전 7:16에는 아브라함이 시켐(Sychem)의 아버지 엠모르(Emmor)의 자손으로
         부터 구입한 돌무덤에 야곱과 요셉이 묻혔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호수아 24:32에는
         야곱이 세켐(SHECHEM)의 아버지 함모르(HAMOR)의 아들들로부터 구입한 땅에
         요셉이 묻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모순은 아브라함이 돌무덤을 힛인(Hittites)(창 50:13), 엠모르의 아들 시켐의 아들,
         소알(Zohan)(창 23:8)의 아들이였던 에프론(창 23 장)으로부터 구입하였다는 것을
         알면 해결된다. 야곱은 히위인(Hivites)(창 34:2) 세켐(시켐이 아님)의 조상 함모르
         (창 33:19)로부터 들을 구입하였다. 아브라함의 묘는 야곱의 땅에 있었다.

       성경은 언제나 주의 깊게 연구해야 한다. 성경에서 동명이인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 : 시몬 10 명, 마리아 6 명, 요한 4 명 등). 어떤 사람은 하나 이상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예; Peter/Cephas/Simon/Simeon, Levi/Matthew, Daniel/Belteshazzar, Joshua/Jesus, 등) 어떤 지역은 하나 이상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예; Chattanooga, Tennessee는 Ross's Landing 이라고도 불린다. 시내산/호렙산, Bethel/Luz, 등)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II. 성경 해석의 기본규칙(Rule)

     "황금율" 다음으로 모든 성경 해석에서 철저히 준수되어야 할 두 가지 필수 규칙이 있다.

     A. 성경은 반드시 문법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는 성경이 영어 단어의 상용 의미와 영어 문법의 표준 규칙에 따라 해석되어야 함을
        뜻한다. 해석의 기본 원칙으로 이 이상의 것은 없다. - 이 원칙을 벗어나면 단지 문학적
        혼란을 낳을 뿐이다.

         이 관점에서 적용되어야 할 세 가지 "법"이 있다.

         1. "직접 서술문(Direct Statement)"의 법

            a. 정의
               성경의 모든 구절은 문자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말씀하는 바의 의미를 정확히
               취해야 한다. 직접 본문이나 어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것은 다른 의미를 낳는다.

            b. 추론
               "평범한 의미가 상식으로 통하면, 다른 의미를 찾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모두
               넌센스가 될 것이다"

            c. 예
               i.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신약의 교회가 된다는 어떠한 근거도 없다.
                  고린도전서 10:32은 분명하게 "유대인"과 "하나님의 교회"를 구별함으로써
                  그러한 자유로운 해석을 허락하지 않는다.

              ⅱ. 가나안은 가나안이다.
                  많은 찬송가에서 대중적으로 잘 알려졌지만, 믿는이는 "약속의 땅" 이나
                  "가나안의 행복한 나라"에 묶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녀의 마지막 목적지는
                  (가나안이 아니라) 하늘이다 - 가나안은 항상 이스라엘 나라의 일부인 문자적인
                  땅을 가리킨다. 스바냐 2:5에 따르면, 가나안(분명히 하늘이 아니다)은 주님의
                  날에 황량한 폐허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영적으로 적용하더라도
                  (해석이 아니다), 가나안은 하늘로 대비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나안은 승리한
                  그리스도인이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즐거워하는 승리와 축복과 안식의 장소를
                  의미한다. 히브리서 3:11~4:11을 볼 것.
              ⅲ. 시온은 시온이다.
                  시온은 그 위에 예루살렘이 세워진 언덕이다(삼하 5:7). 시온은 자주
                  예루살렘으로(예; 시 147:12), 그리고 하늘에 속한 의미에서 새예루살렘으로
                  바뀌어 사용된다(히 12:22). 그러나 시온은 교회도, 하늘도 아니다.

              ⅳ. 천년은 천년이다.
                  비록 숫자가 상징적 의미를 갖을지라도, 만약 분명하게 확실하지 않다면 모든
                 숫자들은 반드시 그대로 취해져야 한다. 계시록 20:2~5에서 "...천년"은 문자적인
                 1000 년을 의미하지 시간이나 영원의 어떤 정해진 기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David Cooper는 말하기를 "....본문의 사실들이 분명하게 다른 것을 가리키지 않는
          한 각 단어의 주된(primary), 보통의(ordinary), 일상적(usual) 의미를 취하라"고 했다.

         2. 본문의 법(The Law of Context)

            a. 정의
               성경의 모든 구절은 본문의 빛 안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b. 추론
               "본문(context)에서 취한 구절(text)은 구실(pretext)이 된다" 성경 구절의 본문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다음 사항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i. 직접 본문(The Immediate Context)
                 * 구절이 위치한 장(Chapter)
                 성경에서 모든 절은 앞서거나 뒤따르는 것이 있다. 이것이 직접본문이다.
                 직접본문은 구절을 올바르게 해석하고자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다.

                 자주 거론되는 이야기가 있다. 낙담한 사업가가 마침내 성경에서 인도를 받기로
                 하였다. 그가 임의로 성경을 열고 손가락으로 집은 구절은 마태복음 27:5였다.
                 "..스스로 목을 맨지라" - 이 충고가 너무나 격하다고 생각되자, 다시 시도했다.
                 이번에는 누가복음 10:37을 집었다. - "가서, 너도 이같이 하라." 그는 좌절
                 하였으며, 다시 시도했다. 이번에는 요한복음 13:27을 집었다 -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행하라"

                 이 익살스러운 이야기는 본문에서 완전히 벗어난 구절을 취하여 잘못된 메시지와
                 교리로 끝나는 심각한 오류를 보여준다.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이단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유명하다.

             ⅱ. 두번째 본문
                 * 구절이 위치한 성경 기록
                 하나님의 말씀에서 각 성경기록들은 적어도 한 개의 주요 주제를 가지고 있다.
                 특정 구절을 해석할 때 반드시 이 주제를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면,

                      고린도전서는 교회의 질서를 다룬다.
                      갈라디아서는 유다주의를 다룬다.
                      디모데전서는 목양서신이다.
                      신명기는 율법의 두 번째 부여이다.
                      말라기는 후기 바벨론 포로 대언자의 선포이다.
                      전도서는 삶의 의미를 상고하는 것을 다룬다.
                           
             ⅲ. 넓은 본문(The Broad Context)
                 * 구절이 위치한 유언서(Testament)
                 전(全) 성경에서 본문의 위치를 고려하면 역사적, 경륜적, 예언적 요소들을
                 얻을 수 있다.

             ⅳ. 주제 본문(Topical Context)
                 * 성경의 다른 부분에 있는 대비 구절(parallel passage)

              v. 교리적 본문(Doctrinal Context)
                 * 하나님의 말씀의 관련된 교리적 구절
                 성격상 교리적인 구절(text)은 동일한 가르침을 다루는 다른 구절(passage)과
                 결코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성경의 근본 교리는 결코 한 개 또는 두 개의 "증거
                 본문(Proof texts)"에 기초하지 않는다 - 그들은 함께 짜여져서 조화롭게 전체를
                 이루는 많은 구절들(어떤 것은 중심적이고 어떤 것은 주변적인)에 기초한다.

            c. 예
              i. 여호와의 증인들은 소멸설(Annihilation)의 사악한 교리를 입증하기 위하여
                욥기 7:9을 취한다. 그렇게 해서 이 구절을 (1) 세상에 속한 관점에서 욥의 경험에
                관련한 직접 본문으로부터 억지로 떼어 놓고  - 10, 21절을 보라.
                (2) 둘째 구문으로부터 억지로 떼어 놓고 (왜냐하면, 욥은 죽음 후의 삶을 믿었다
                - 14:12~15, 19:25~27)  (3) 넓은 본문에서 억지로 떼어놓고 (왜냐하면 죽은
                구약의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까지는 직접 주님이 현존하신 곳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 엡 4:8~10을 볼 것) (4) 교리적 본문에서 억지로 떼어놓았다.
                (왜냐하면 성경은 죽음 후의 의식적 생명을 가르친다 - 눅 16:19~28을 볼 것)

             ⅱ. 유사한 양식으로 몇몇 이단들은 전도서 3:18~22와 9:5,10을 사용하여 혼수면설과
                 소멸설을 가르친다. 전도서 전체의 둘째 본문은 "해 아래 삶", 곧 외적인 감각의
                 삶이다. 솔로몬의 결론(12:13,14)은 명백하게 죽음 후의 삶을 가르친다.

             ⅲ. 직접 본문에서 발췌한 빌립보서 2:12f는 행위에 의한 구원을 가르치는 것 같다.
                  그러나 13절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를 설명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우리
                  안에 있는 구원은 반드시 우리 삶의 모든 면에서 역사하는 구원이다.

             ⅳ. 이사야서 53 장은 실로 모든 죄인을 위한 보배로운 구절이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관한 놀라운 예언이다. 그러나 그 본문은 올바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이 장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들이 찌른 자를 바라 볼 것이요"(슥 12:10)라는
                  절망적인 이스라엘의 외침의 일부이다. 이 장은 유대인의 회개와 그리스도의
                  천년 왕국을 다루는 큰 부분의 일부이다.

              v. 마태복음 25:31~46에 기술된 심판은 영원한 상태가 시작되기 전 "크고 흰 왕좌"
                 에서 구원받은 자와 잃어버린 자를 나누는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본문은 천년
                 왕국(34절) 전에 여호사밧 계곡에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발생할 민족의
                 심판임을 보여준다(요엘 3:12). 구원받은 자는 "크고 흰 왕좌" 심판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ⅵ. 몰몬교는 죽은 자를 위하여 침례 - 구원을 위한 대리 침례(proxy baptism) -를
                  베푸는 그들의 실행의 기초 본문으로 고린도전서 15:29을 취한다. 본문은 이
                  구절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첫째로, 이 장은 부활을 주제로 다룬다. 이
                  장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시작하여 믿는이의 부활로 끝나며, 중간에 부활이 없는
                  경우의 결과를 다룬다. "죽은 자(the dead)"는 29 절에서 3 번 나오며 15 장의
                  다른 구절에서 11 번 나온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13절)... 우리의 그리스도는
                  헛되고(13,16절), 우리의 선포도 헛되고(14절), 우리의 구원도 헛되고(14,17,18절),
                  우리의 소망도 헛되고(20절), 우리의 싸움도 헛되고(30~32절), 우리의 거룩한
                  삶도 헛되고(32,33절), 우리의 침례도 헛되다(29절). 침례는 죽음(잠김)과 부활
                  (올라 옴)을 예표한다. 침례를 받을 때 물에서 올라옴으로 믿는이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자신의 부활의 확실한 소망을 선언한다. 29절의 "혹(else)"은 다음과 같이
                  묻는다 : "부활이 없다면 왜 침례를 받는가?" 그러한 경우 침례는 영원한
                  잠김이어야 할 것이다.

             ⅶ. 종종, 본문의 선행사가 중요한 경우가 있다.
                 마태복음 16:19에 언급된 "왕국의 열쇠"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베드로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16절에 있는 선행사인 "내 교회"에게 주어졌다.
                 (주님의 교회에게 위임된 이 "열쇠들"은 구원의 문을 여는 복음을 가리킨다)

               사도행전 2:16에서 사도 베드로의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 이것이니..." 는
               요엘서 2:28~32의 대언의 성취로서 오순절날의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역사한 성령님과 그분의 가시적 영향을 가리킨다. - 그것은
               요엘서 2:28에서도 언급된 것이다. 베드로는 술 취했다는 고소에 대하여 답변하고
               있는 것이다.

             ⅷ. 본문을 결정하여 성경의 난제들을 푼다.
                 요엘서 3:10 은 보습을 두드려서 칼을 만드는 것에 관해 말한다. 그러나
                 이사야서 2:4 은 칼을 두드려서 보습을 만드는 것에 관해 말한다. 이러한 분명한
                 모순은 근접하는 본문으로부터 이들 두 구절이 각각 그리스도의 재림 전 후와
                 관련됨을 이해하면 해결된다.
           
             ⅸ. 많은 경우 단어나 구절이 그것이 등장하는 연결부에 의해 수정되거나 제한
                  받으며, 그 의미를 결정하기 위하여 본문을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 로마서에서 "율법"이라는 단어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따라서 그 의미는
                      본문 또는 배경에 의하여 결정된다.

                    · 모세의 법 - 롬 2:14 (처음 3 번 언급)
                                   롬 2:20,23
                    · 자연의 법 - 롬 2:14 (마지막 언급)
                    · 직관의 법 - 롬 2:15
                    · 규칙 - 롬 3:27f
                    · 원칙 - 롬 7:21
           
                 예. 사도행전 2:38의 단어 "for"는 침례의 목적에 대하여 이 구절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켐벨파는 침례를 통하여 죄의 사면을 받는다는 그들의
                      교리를 지지하기 위하여 "for"가 "..하기 위하여(in order to)"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단어 "for"는 또한 ".. 때문에(because of)"를 의미할
                      수 있다. 만일 어떤 사림이 절도로(for) 교도소에 수감된다고 말한다면, 이는
                      절도를 범하기 위하여(in order to) 수감된 것이 아니라 절도 때문에
                      (because of) 수감된 것을 의미한다. 누가복음 5:14에는 "for"에 대한 이 두
                      가지 용례가 다 보여진다. 시도행전 2:38을 "...각자 침례를 받아...죄들의 사면
                      때문에..."라고 번역하는 것이 침례 죄 사면(baptismal remission)에 관한
                      의견을 명확하게 반박하는 많은 다른 성경과 완전히 일치한다.

                 예. 단어 "믿음(faith)"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에 대하여 역사하는 것"을
                      뜻하나, 본문에서 결정되어야 하는 몇 가지 의미상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

                 · 에베소서 2:8에서 믿음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가리킨다.
                 · 유다서 3 절에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친 교리의 체계(body)를
                    가리킨다.
                 · 로마서 14:23에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확신을 의미한다.

         3. "언어"의 법
            어떤 이들의 주장과는 반대로,성경의 모든 부분을 절대적으로(신비적으로)
            문자적으로만 해석해서는 않된다.
            대부분의 성경이 직접 (문자적) 구문의 형태로 있지만, 성경은 또한 비유적
            언어나 비문자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수용 가능하다.

            a. 정의
             "문자적인 해석이 명확한 모순과 불합리를 포함하지 않는다면, 단어들은
            문자적인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b. 추론
             성경에서 상징적 언어나 비유적 언어를 사용하는 부분에 대해서 해석자가
             해석에서 문자적 방식을 사용해서는 않된다.
               주(註) : 모든 비문자적 언어는 뜻이 통하기 위하여 반드시 문자적 단어에
                           근거하여야 한다.

            c. 비문자적 언어의 예
               성경의 일부는 직접 구문이 아닌, 예표, 우화, 상징, 비유(비문자적) 언어로
               기록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할 때, 이들에 대한 해석에는 각각에 대하여 적용 가능한
               해석 규칙을 따라야 한다.
              i. 직유법
                 직유법은 비교를 나타내는 어법이다.
                 직유법을 쓰는 목적은 그림을 보는 것 같이 생생하게(graphic form)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직유법을 구분하는 '열쇠'는 단어 "like" 또는 "as" 이다.

                 성경에서 직유법의 예는 다음과 같다.
                 - 출 24:17
                 - 시 2:9
                 - 시 11:1
                 - 시 68:13
                 - 시 102:6
                 - 솔로몬의 노래 2:9
                 - 사 1:8
                 - 사 1:18
                 - 마태 18:3
                 - 벧전 5:8
                 - 계 9:5~10

             ⅱ. 은유법
                 은유법 역시 비교를 보여주는 어법이지만 한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
                 주장함으로써 비교를 나타낸다.

                 성경에서 은유법의 예는 다음과 같다.
                 - 시 18:2
                 - 시 22:6
                 - 시 57:4
                 - 잠 7:4
                 - 호 7:8
                 - 호 10:1
                 - 눅 13:32
                 - 눅 22:19
                 - 딤후 2:21
                 - 요한복음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신 "I AM" 명칭은 모두 은유법의
                    예이다.
           
                 벌콥은 하나님께서 (1) 인간의 감정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생각하는
                 주의(主義)(anthropopathisms) 에 의해 (예를 들면 창 6:6, 신 13:17 엡 4:30),
                 (2) 인간의 육체적 특성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주의(主義)
                 (anthropomophisms)에 의해 (예를 들면, 출 15:16, 시 34:16, 약 5:4, 등) 종종
                 은유적으로 묘사된다고 지적했다.

             ⅲ. 알레고리
                 알레고리는 확장된 은유법이다. 알레고리는 비유와 비슷하다. 주요 차이점은
                 비유는 문자적 언어를 쓰는데 반하여 알레고리는 은유적 언어를 쓴다는 점이다.

                 시편 80:8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포도나무"로 불렸다. - 은유. 9~16a 절은 이
                 은유를 출이집트에서 군주 정치까지의 역사적 사건으로 발전시켜서 전개한다.

                 알레고리의 다른 예는 갈라디아서 4:19~31에 있다. 여기서는 은혜와 율법
                 사이의 차이점을 사라와 하갈의 실제 이야기로 설명한다.

             ⅳ. 환유법(換喩法)(Metonymy)
                 * 그리스어 어원 - 이름을 바꾸기
                 환유법은 한 단어나 표현을 원인이나 결과와 관련한 다른 단어나 표현으로
                 대치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환유법의 예는 다음과 같다.

                 - 이사야 22:22 : "내가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 위에 두리니..." 여기서
                   집의 열쇠는 열쇠를 가지고 있는 효과, 즉 집을 통제하는 것을 나타낸다.
                 - 눅 16:29 : "그들에게 모세와 대언자들이 있으니..." 여기서 '모세와 대언자들'
                    이란 용어는 모세와 대언자들로 인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표한다.
                 - 사도행전 22:16 : "...침례를 받고, 네 죄들을 씻어 버리라..." 우리는 다른
                    성경구절에서 침례가 죄들을 씻어 버리지 않는다는 것과, 바울이 침례를
                    받기 전에 거듭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것이 환유법임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죄들을 씻어 버리는 것"은 침례가 묘사하는 바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효과로부터 온다.

              v. 제유법(Synecdoche)
                 제유법은 전체를 일부로, 또는 일부를 전체로 나타내는 어법이다. 예를 들면,
                 종류(種類 : genus)는 종(種 : species)의 일부로 나타나거나 또는 종(種)이
                 종류의 일부로 나타낼 수 있다.

                 성경에서 제유법의 예는 다음과 같다.
                 - 창 2:16 - "동산의 각종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자유롭게 먹되"
                   여기서 전체(나무)는 일부(열매)로 나타내어진다.
                 - 마 6:11 -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빵은 일부로서, 필수적인 음식(전체)을 나타낸다
                 - 행 27:37 - "배에 있는 우리 모두의 수가 이백 일흔 여섯 혼이더라"
                   여기서 부분(혼)은 전체(사람들)를 나타낸다

             ⅵ. 과장법(Hyperbole)
                 과장법은 개념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과장 또는 허풍을 사용하는 어법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과장하는 구절을 확인할 때, 극도의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에서 과장법의 예는 다음에서 볼 수 있다
                  - 창 22:17 - "별들과 같이 네 씨가....모래와 같이..."
                    이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의 수가 정확히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의 수와
                    같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 이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셀 수 없이 많은
                    후손들이 나타날 것을 의미한다.
                  - 대하 27:4 - "...그가 산에 도시들을 세우고,..숲에 성들을 세웠더라..."
                     이는 분명히 요담 왕이 모든 산에 도시를, 모든 숲에 성을 세울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그의 왕국이 어떻게 번영하는지를 설명한다.
                  - 요 21:25 - "이 세상만으로는 기록된 책들을 수용하기에 부족하리라.." 이는
                     그리스도의 많은 사역을 묘사하는 표현이다.

             ⅶ. 반어법(Irony)
                 반어법은 찬양 또는 찬사를 이용하여 비난 또는 조소를 하는 어법이다. 성경에서
                 반어법의 예는 다음과 같다
                 - 왕상 22:15
                 - 욥 12:2
                 - 고전 4:8,10
               
                 어떤 경우, 반어법은 빈정거림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예 : 삼상 26:15, 왕상 18:27, 암 4:4

             ⅷ. 의인법(Personification)
                 의인법은 비인격적 대상에 인격적 특성을 부여하는 어법이다.

                 예를 들면,
                 - 시 22:17 "제가 제 모든 뼈를 말할 수 있나니, 그들이(제 뼈들이) 저를 보고
                    빤히 쳐다보나이다"
                 - 시 68:16 "높은 언덕들아, 어찌하여 뛰느냐?"

             ⅸ. 관용어법(Idioms)
                 사람들의 언어와 관습에 대하여 특유한 어법이다. 예를 들면, 성경이 어떤 이의
                 머리 위에 숯불을 쌓아 올리는 것에 관하여 말할 때, 이는 머리 위에 놓여진
                 그릇에 불을 붙이기 위하여 숯불을 나르는 성경시대의 관습을 가리킨다. 서양적
                 사고에서 이 성경 구절은 정확히 반대의 의미를 갖는다 - 대적임에도 불구하고
                 선대하는 것이 아니라, 대적들에게 선대함으로 대적을 해치는 것이다.

              x. 생략법(Ellipsis)
                 어떤 문장에 단어가 생략되어 독자로 하여금 빈칸을 채우도록 하는 경우,
                 이러한 생략을 생략법이라고 부른다

                 성경에서 생략법의 예는 다음과 같다.
                 - 창 3:22 - 하나님의 말씀은 끝나지 않았다 ; 그것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23절이 나타낸다.      
                 - 출 32:32 "네가 그들의 죄를 용서하기를 원한다면..."
                 - 시 6:3, 90:13 "오 주님, 언제까지니이까?"  독자는 그의 마음에
                    "주께서 행하시기 전"을 추가해야 할 것이다.

                 (주) 문자적 간결의 기타 형태로는 요어 생략(brachyology)과
                        액어법(Zeugma)이 있다

             xi. 완곡어법(Euphemism)
                 완곡어법은 통상 부드러운 효과를 낳기 위하여 다른 것으로 대치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주목할만한 한 예는 믿는이에게 관련된 "죽음(death)"에
                 대한 완곡어법이다 - "잠잔다(sleep)" : 행 7:60, 고전15:51, 살전4:13~15를 볼 것

            xⅱ. 곡언법(曲言法)(Litotes)
                 곡언법은 반대를 부정(negation)함으로 긍정이 되는 어법이다. "그는 강하다"
                 라고 말하는 대신 곡언법은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는 약하지 않다"
                 곡언법의 성경적 예는 시편 51:17 과 사 42:3에서 볼 수 있다.

            기타 수많은 종류의 비문자적 언어와 어법이 있다. - 반복법(epizeuxix),
            모순어법(oxymoron), Paronomasia, 등. 그러나 이 어법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데 용례가 드문 어법이다.

         4. 원어의 사용
            성경해석학과 주석을 다루는 대부분의 책은 그들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리스어(또는 히브리어)로 가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해석하고 가르치는 것이 영어 성경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권위역 KJV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삼는다.

            권위역 KJV는 영어가 최고로 완성되었을 때 발행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권위역 KJV는 (타락한 현시대까지) 영어 문법의 표준이 되어 왔다. 그러므로
            영어를 이해하기 위하여 헬라어나 히브리어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a. "그리스어로 가는" 위험
               원어를 언급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공통되는 실제적인 문제점을
               드러낸다.
              i. 성경적 언어를 숙달하기 위하여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한다.
                 대부분 용어색인(Concordance)에서 그리스어 단어와 그 의미를 찾는 법을
                 안다. 그러나 문법과 구문론 등을 이해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ⅱ. 교만에게 기회를 준다.
                 약간의 헬라어를 제시함으로 듣는이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는 유혹이 항상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일은 인상을 주는 것도, 외국어를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
                 듣는이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주시는 성령님을 기대하며, 영어 성경을 가능한
                 분명하고 이해할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이다.

             ⅲ. 원어는 종종 넌센스가 되기 쉽다.
                 다음의 인용문은 마태복음 16:19에서 발견되는 "묶는 것(binding)"과
                 "푸는 것(loosing)" 이란 용어에 대하여 해석한 논문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인용문은 지적인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증명한다.

                 "묶는 것"과 "푸는 것"의 동사 형태는 모두 미래의 가능성을 나타내는 가정법이며,
                 kai(and)에 의하여 직설법의 미래의 실제와 연결된다. "--묶일 것이요" 와
                 "풀리리라" 는 그리스어 문법에서 유일무이한 구성이다. 이것을 '우회적
                 미래완료시제'라고 부른다. 이것은 미래 분사와 미래 정형동사의 복합 사용이다.
                 평범한 언어에서 정형동사는 "to be" 이다, 그리고 그것의 미래시제는 "shall be"
                 이다. 분사는 이 경우에 동사를 완성시키기 위하여 사용된 동사적 명사이다.
                 완료시제는 현재의 계속되는 결과와 함께 과거의 행동을 가리킨다."

            b. "그리스어로 가는 것"의 유익
               그러나 위의 기술은 그리스어나 헬라어를 언급하는 것이 저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원어로 가는 것이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으나 제한적이다.
              i. 영어 성경을 지지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침례가 물에 잠기는 것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리스어 단어 밥티죠와 그 의미를
                 언급할 수 있다. 그러나 침례가 물에 잠기는 것이라는 사실은 영어에서도 알 수
                 있다(마 3:16, 행 8:38,39).

                 교회가 모임(assembly)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그리스어 단어 "에클레시아"와
                 그 뜻을 자주 언급한다. 영어에서 단어 "교회(church)" 또는 "교회들(churches)"
                 에 관한 여러 관주를 연구하면 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영어의 가르침을 지지할 수 있는 곳에 그리스어를 사용하라.
                 권위역 KJV를 정정하거나 비난할 목적으로 그리스어나 히브리어를 사용하지 말라.

             ⅱ. 영어 성경을 높이기 위하여 사용될

출처: http://blog.localchurches.kr/_blog/blog/view.php?idx=9486&page=&blogID=kco6567&category_idx=&dev=&in_m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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